[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라운드는 누구하고든 처음 함께 하는 것이다.
"오호… 골프전문기자셨죠? "
이 말 한 마디가 내 골프 실력을 한 뼘은 줄어들게 만든다. 말한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어디 얼마나 잘 치나 보자 이런 말로 들려 시험 치르는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계속 만날 사람이라면 다음에 만회할 수 있다는 여유를 갖겠지만 이번 한번 만나고 말 사람들이면 압박감은 더해진다.
"뭐, 별거 아니던 걸…" 이런 소리 듣기는 싫은데 때로 겉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리기도 하는 널뛰기 골프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터라 새로운 동반자는 늘 부담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최근 7개월 동안 홀인원을 2번이나 했다는 40대 초반, 20여 년 동안 골프를 했고 요가로 늘 몸을 다진다는 50대 중반의 여성골퍼 두 명과 동반 라운드를 하게 됐다. 그들은 내가 뭘 했던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어디 한번 보자며 동반을 요청했다.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골프는 치고 싶고, 하여 가기로 했다.
연습장에 두 번 갔지만 샷이 마음같이 되지 않는 상황. 라운드 가기 전날 저녁 슬그머니 걱정이 됐다. 망신은 당하지 말아야 할텐데..
궁리 끝에 방 한구석에 세워 두었던 퍼팅 매트를 꺼내 깔았다. 둥글게 말려 있었던 탓에 더 울퉁불퉁해져서 볼이 중간에 튀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트가 매끄럽지 못하니 거리감이니, 방향감이니 뭐 그런걸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공 3개를 가지고 그냥 스트로크만 신경 쓰면서 퍼팅을 했다.
공을 밀어 버리지 않고 임팩트가 되도록 하는 것에 정신을 모았다. 아마추어들의 퍼팅은 보통 공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그냥 밀어 버리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짧은 퍼팅일 경우 소위 문질러 버린다고 말할 정도로 살짝 건드리고 마는 것이 문제다.
공이 탕 소리를 내면서 굴러가도록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했다. 마침 TV에서 골프경기를 중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퍼팅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퍼팅 해보다가 하면서 지루한 줄 모르고 한 50번은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볼 3개로 했으니 퍼팅 스트로크를 150번은 한 셈이다.
그러면서 신경 썼던 것 또 하나는 스윙도중 퍼터 헤드 위에 그려진 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퍼터의 스윙 궤도가 일정하도록 할 뿐 아니라 스윙 도중 헤드가 이리저리 뒤틀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또 헤드 위에 그려진 선에 집중하다 보면 퍼팅 백스윙에서 다운스윙으로 전환할 때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는 동작도 사라진다. 잘못된 동작은 다른 동작에 집중하면서 고치는 게 제일 빠르다.
사실 그때는 연습을 한다기보다 불안한 심리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뭔가 했다는 자기 위안을 얻는 것이 더 컸다.
그러나 그 위안이 다음날 라운드에서 기대 이상의 빛을 발했다.
반갑게 인사하고 티잉 그라운드에 선 순간 샷은 역시 낯을 가렸다. 공에만 집중하려 해도 20m 옆에 선 동반자들이 신경 쓰였다. 백 스윙 크기를 줄여야지, 하체를 움직이지 말고, 임팩트 때는 왼팔을 쭉 펴주고, 폴로스루는 어쩌고…. 그 동안 배워 넣어두었던 모든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춤을 췄고 길어야 1.8초인 그 짧은 순간의 스윙 동작을 방해했다. 동작이 크니까 방해도 컸다.
그러나 그린에서는 상황이 좀 달랐다. 홀에서 멀리, 또 가깝게 떨어진 위치는 달라도 전날 밤 했던 퍼팅 스트로크 연습 덕분에 자신감이 있었고 처음 몇 번 조심스럽게 시도했던 것이 속속 성공하면서 자신감은 더 커졌다. 직전 기억이 가장 크게 동작을 지배하기 때문에 전날 했던 스트로크 연습이 더욱 효과가 컸던 것이다.
그날 라운드를 마친 뒤 새삼 느꼈다. 체면 구기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막판 벼락치기 방법은 역시 퍼팅연습이다. 러프로, 언덕으로 각자 길을 가다가 결국 다 함께 만나는 곳이 그린이다. 각자 흩어져 샷할 때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 한방 `뻥` 터뜨려주면 그 인상이 훨씬 강렬하다. 샷이 좀 엉성해도 퍼팅이 야무지면 ‘짠물 골프’가 될 수 있다.
라운드 앞두고 연습 못해 걱정인 골퍼들에게 `퍼팅 벼락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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