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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문 대통령의 화려한 변신이다. 이는 지난달 18일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보수 일각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정조준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유신시대와 5공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다”고 자유한국당을 에둘러 비판한 바 있다.
◇文대통령 “애국 앞에 보수·진보 없다” 여야 통합정치 주문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34회 현충일 기념식에 참석, 유독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다. 추경안 처리는 물론 시급한 민생경제 법안 처리가 여야의 극단적 대치로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9일 북유럽 3개국 해외순방에 앞서 7일 오후를 데드라인으로 여야 5당대표 회동과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을 제안해놓은 상태이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한 대목이다. 여야 갈등과 대치가 계속 가팔라지면서 정상적인 국정운영까지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해방 이후 역사발전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공을 모두 인정하면서 난국 타개를 위한 통합정치를 당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여야의 상생정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文대통령, 상생정치 주문 왜? 대내외적 여건 악화에 한국당에 ‘대화 시그널’
문 대통령의 이날 여야 상생정치 주문은 절박한 호소다. 특히 대내외적인 경제여건 악화를 극복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북미관계의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정치권의 상생이다. 다만 여야 정치권의 상황은 정반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대치국면과 한국당 장외투쟁의 여파로 매일 상대방을 향한 극단적 비난과 막말이 춤을 추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지지층만을 의식해 강경노선을 고집한 결과다. 적대적 대결구조에 기생하는 여야의 극단적 정치문화로 민생경제는 날로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리적 대안 마련이 아니라 사생결단의 정치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을 맞아 애국을 강조하면서 보수·진보의 반성과 대타협을 촉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지층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민족과 국가라는 보다 큰 틀에서 통합의 정치에 나서달라는 주문이다. 더구나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거칠게 비유했다는 점에서 현충일 추념사의 핵심은 제1야당을 대화의 틀로 유도하기 위한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는 진보·보수라는 표현을 각각 9번 사용됐지만 애국이라는 단어는 11번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