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현옥기자] ‘철의 여인’의 칼 같은 퇴임.
중국에서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우이 부총리가 내년 3월 퇴임할 것이며 그 후에는 공직은 물론, 어떤 민간직책도 맡지 않을 것이라며 "나를 깨끗하게 잊어달라"고 선언했다.
우이 부총리는 지난 24일 중국 국제상회대표대회에 참석해 “내년 3월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를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이 부총리는 남성 정치인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당당함으로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
그는 2002년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의 10대 여성’ 중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으며 2003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국무위원 중 최다 표를 얻어 재상으로 선출됐다. 그는 중국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유럽연합(EU) 간 국제식품안전포럼에서 우이 부총리는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만델슨 집행위원이 “올해 적발된 복제품의 80%가 중국제”라고 말한 것에 대해 근거를 대라며 노발대발 한 것이다.
1988년 베이징시 부시장에 발탁되면서 공직에 들어선 우이 부총리는 ‘대륙의 딸’답게 과감한 결단력과 강한 카리스마로 중국 뿐 아니라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3년 후진타오 주석에 의해 부총리로 발탁되자마자 그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위생부장을 겸직하며 최악의 전염병 확산을 막아내 “우이가 맡으면 역병도 사라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철의 여인’으로서 최고의 면모를 보인 것은 2005년 일본 총리와의 회담 취소 사건.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문제를 두고 내정 간섭을 운운하며 참배를 강행하자 우이 부총리는 면담을 6시간 앞둔 시점에서 “외교적 결례는 중요치 않다. 더 이상 고이즈미 신사 참배를 좌시할 수 없다”며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귀국하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잘했다’, ‘역시 여걸답다’, ‘통쾌하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문제 삼으며 좀도둑이라고 비아냥거리자 우이가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유물을 강탈해 간 날강도”라며 맞대응한 것도 우이 부총리가 중국인들의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지난 24일 은퇴선언을 하자 많은 중국인들은 ‘철의 여인’이 사라진다며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우이 약력
▲ 1938년 후베이성 우한 출생
▲ 1962년 베이징 석유학원 석유정제학과 졸업
▲ 1962년 중국공산당 입당
▲ 1988~1991년 베이징 부시장
▲ 1991~1993년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차관)
▲ 1993~1997년 대외경제무역부 부장(장관)
▲ 1997~1998년 당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 1998~2002년 국무위원 겸 정치국 후보위원
▲ 2002~현재 당 중앙정치국 위원
▲ 2003~현재 국무원 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