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 대결. AI의 승리로 알려졌지만 유웅환 전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오히려 인간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유 전 대표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이같은 발언을 듣고 깜짝 놀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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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간 기업뿐 아니라 국정운영에도 참여했습니다. 2017년에 문재인 대선캠프 합류 당시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인재영입 1호’로 발탁됐습니다. 2022년 윤석열정부 인수위에서는 경제2분과 인수위원으로 산업 분야 국정과제를 맡았습니다. 2023년 11월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사임한 뒤 현재는 미 캘리포니아에서 AI 연구 등을 하고 있고요.
IT 전문가인 유 전 대표는 “AI를 연구하면 할수록 AI와 에너지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봐야 할 것은 AI에 앞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새정부 출범 이후 ‘AI 3대 강국’ 목표로 AI에 대한 기술 투자, AI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망 확충 등이 강조되고 있는데, “AI 기술 투자에 앞서 사람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최근 방한한 유 전 대표를 서울에서 만나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알바고, 이세돌보다 8000배 많은 ‘전력 사용·탄소 배출’
유 전 대표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사람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에서 각각 얼마나 에너지를 썼는지를 비교해보면 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며 아래처럼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 결과와 유 전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2016년 당시 알파고는 1202개의 CPU와 176개의 GPU를 사용했습니다. CPU는 약 100W, GPU는 약 235W의 단위 전력을 사용했고 이를 총전력 사용량으로 환산하면, 알파고는 시간당 160kW의 전력을 썼습니다. 한 판의 대국이 약 4~5시간 걸렸으니 알파고는 800kWh의 전력을 사용한 것입니다. 대국이 5차례 치러졌으니까 총 4000kWh의 전력을 쓴 것입니다. 탄소배출량은 1kWh당 약 0.5kg CO₂를 썼다고 가정하면 약 2000kg CO₂를 배출한 것입니다.
반면 사람의 뇌가 시간당 약 20W를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이세돌은 1판당(5시간 기준) 0.1kWh를, 총 5차례 대국(25시간 기준)에서 0.5kWh를 사용한 것입니다. 탄소 배출량을 환산하면 0.25kg CO₂의 탄소를 배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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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유 전 대표는 “알파고가 에너지를 이렇게 많이 쓸 수 있게 한 당시 경기는 에너지 측면에서 봤을 때 불공정한 경기였다”며 “그럼에도 이세돌이 네 번째 대국에서 신의 한 수로 승리한 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승부 기록만 보면 AI가 이겼지만 인간은 극히 적은 자원·에너지를 사용해 창의적 판단과 전략적 선택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AI 시대에 AI가 에너지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할수록 사람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며 AI에 앞서 ‘제2 이세돌’에 투자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AI보다 사람이 중요…역대 대통령 실패도 사람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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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대표는 “각 분야의 최고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발탁하는 게 중요한데, 역대 정부가 실패하는 원인을 보면 내 사람을 챙겨주려는 정치적인 보은 인사 때문”이라며 “정부의 실패는 실력 있는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제때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습니다. 최근 부동산 급등, 내로남불 발언 논란을 봐도 인사만사(人事萬事)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재명정부는 어떨까요. 유 전 대표는 “새정부 1년 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출생과 고령화,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 장기 불황 위기, 자영업 위기와 양극화 등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기 상황과 유사하다”며 “새정부 1년 차에 최고의 인재를 기용해 힘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30년을 막기 위해 새정부 1년 차에 혁명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반대로, 실리콘밸리처럼, 은퇴·정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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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의 양극화·중산층 붕괴로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라며 이민·인재 영입을 막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우리나라는 글로벌테크 회사에서 일하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벤처자금 정책 지원을 강화하거나 영입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어 유 전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귀소 본능이 있어서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며 ‘권한을 주고 일 시키는 조직 문화 정착’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국내 인재 영입이 어려운 건 처우 문제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조직문화 영향도 크다”며 “인재를 뽑아 놓고 인사·예산 등의 권한은 안 주고, 문제가 터지면 책임질 사람부터 찾는 한국의 정부·기업의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조직 문화가 계속될수록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유 전 대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주요 기업은 실력만 있으면 70세가 넘어도 백발의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다”며 “직원들을 소모품처럼 쓰고 50대가 되면 내보낼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실력 있는 인재는 은퇴도 정년도 없이 일할 수 있게 하는 정부와 기업 문화·제도가 안착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잘 될까…“李정부, 韓 국민 저력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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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중국이 앞으로 5년 내에 제조업 제품 품질에서도 우리나라를 앞지를 것입니다. 그때 되면 우리나라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빨리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방향만 잘 잡아주면 국민들의 실행력이 어마어마합니다. 미국을 비롯해 다른 선진국들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재명정부 1년 차에 힘있게 변화를 만들어냈으면 합니다.”
*에너지와 미래=에너지 이슈 이면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에너지 정책을 모색해 봅니다. 매주 연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