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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이 밝은 9일 오전 전국 1만 3964개 투표소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일제히 시작됐다. 사전투표율이 사상 최고인 26.06%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도 오전 6시 이전부터 각 투표소 앞에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동휠체어 타고, 밤 새우고 투표소로…뜨거운 관심
“아침 6시 조금 지나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맨 먼저 투표소로 들어서더군요. 투표를 마치고 나가면서 ‘30년 만에 첫 투표’라고 혼자 되뇌는 걸 들으니 이번 대선에 국민적 관심이 얼마나 큰지 느껴졌습니다.”
‘선택의 날’이 막이 오른 이날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중학교에서 만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탄핵 이후 치러지는 ‘장미 대선’인 만큼 다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 5시 50분 목동중에 마련된 신정 2동 제1투표소와 제4투표소 앞에서는 주민 10여명이 투표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직 교장 임재빈(83)씨는 “평소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눈을 뜨자마자 투표하러 나왔다”며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겠다는 신념에서 살면서 한 번도 투표를 거르지 않았지만 국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제조업체를 운영한다는 이명재(73)씨는 아내와 함께 투표를 마친 뒤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를 바꾸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며 “사전 투표를 한 자녀와 함께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긴 뒤 오후 8시 시작하는 개표방송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차츰 날이 밝아오면서 대학생들과 직장인들도 하나둘 투표소에 나왔다.
권유정(20·여)씨는 “과제를 하다 밤을 새운 탓에 한숨도 못 잤다. 이렇게 잠이 들었다가는 투표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투표를 하러 서둘러 나왔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태석(23)씨는 “하루도 공장을 멈출 수 없는 생산직인지라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면서 “퇴근해서 투표하기엔 시간이 아슬아슬할 것 같아 아침에 투표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노원구 상곡초 체육관 1층에 마련된 상계10동 3투표소에서도 30분 전부터 투표 행렬이 이어졌다.
두 번째로 투표를 마치고 나온 대학생 정지윤(22·여)씨는 “1등으로 오려고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아쉽다. 내 손으로 처음 대통령을 뽑는다는 생각에 전날 밤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인주를 찍은 왼손을 들어보이며 ‘인증샷’을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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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투표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 안양 동안구 웨딩홀 그레이스켈리에 마련된 비산3동 제6투표소에는 굵은 빗줄기에도 시민 10여명이 줄지어 기다렸다. 이들은 “날씨가 궂어도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할 순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아이와 함께 나온 회사원 박광호(40)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가 벌써 친구들과 대선 얘기를 나눌 정도”라며 “기표소 안까지는 같이 못 들어가지만 이렇게 투표소를 같이 둘러보면 교육에도 좋을 거 같아 데려왔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이종덕(37)씨 부부는 “집에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투표 현장에 데려 오고 싶었다”며 7개월 된 아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투표소를 착각한 일부 시민들은 황급히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사전 투표와는 달리 이날 본 투표는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투표를 마친 시민들은 지지 후보에 관계없이 차기 대통령에게 통합과 화합을 주문했다.
경비원 이재학(76)씨는 “지난해 한바탕 난리 끝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데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후보에 한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김순자(57·여)씨는 “주변에 투표 독려를 하기도 했지만 각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니 새로 선출될 대통령을 축하하고 함께 화합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투표율은 14.1%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