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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이준익 감독이 말하는 사도세자의 비밀은?

김성곤 기자I 2015.10.06 09:37:29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사도’ 특집
'영화 속의 사도 역사 속의 사도' 논의
박시백 화백, 이준익 감독, 신병수 교수 등 출연

영화 사도 포스터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영조와 사도세자 이미지.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영화 ‘사도’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영화 속의 사도, 역사 속의 사도’이라는 주제로 사도세자 특집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방송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시백 화백,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와 영화 ‘사도’를 제작한 이준익 감독, 조철현 작가, 이송원 작가가 참여해 사도세자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왜 하필이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느냐는 것. 신병주 교수는 “자결을 명했으나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영조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좀 벌어보자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일단은 저 놈을 가두어 두고 시간을 벌어보자 한 것이다. 또 당시에 잠금장치가 있는 몇 안 되는 가구가 바로 뒤주였다”고 말했다.

이송원 작가는 영조의 딜레마를 언급했다. “당시 조선이 따랐던 명나라 대명률에 의하면 모반 반역죄는 연좌제였다. 세자를 처벌했을 때 자기 자신과 세손인 정조 또한 대역죄인이 되는 까닭에 사약을 주는 형법으로 세자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이고, 유교 사회의 가장이 가법에 따라 아들을 처벌해야 하는 과정이어야 했다는 점에 주목해 사도의 처형에 대한 영조의 입장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가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시백 화백은 “영조가 다혈질이고 욱하고 즉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굉장히 냉철하고 치밀한 사람”이라면서 “‘뒤주’를 이용한 사도에 대한 처분은 이미 확정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영화에서 사도세자가 칼을 들고 영조의 침소까지 간 화제의 장면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박시백 화백은 “사도 세자가 칼을 들고 영조의 침소까지 갔다가 영조와 정조의 대화를 듣고 뒤돌아서는 장면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세자라 하더라도 칼을 들고 임금이 기거하는 처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장면이 작가들의 의구심을 뿌리치고 감독이 밀어붙인 장면”이라며 “칼을 들고 무조건 그곳까지 가야 한다. 왜곡일지라도 영화적 해석이다. 관객은 영화의 사건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사도의 마음과 심정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폭발하는 분노가 표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는 상업 영화이기에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을 위해 부득이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고증과 복식, 아깝게 편집한 장면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팟캐스트 진행을 맡았던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영화 사도의 관객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독자가 서로 섞이고 교감했다”며 “책과 영화의 뜻 깊은 만남이 좋은 선례가 남아 구체적 성과로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팟캐스트 방송 ‘영화 속의 사도, 역사 속의 사도’ 편은 2회에 걸쳐 업데이트됐으며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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