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격인상 자제` 압박..철강업계 끙끙 앓는다

윤종성 기자I 2011.01.20 09:43:17

최경환 장관 이어 정운찬 前총리도 "가격 인상 자제해라"
철강업계, 정부 가격 관여 부적절.."시장 논리에 맡겨야"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정부에서 잇따라 철강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주문이 나오자, 철강업계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정부의 속내는 `산업의 쌀`인 철강제품의 가격을 잡아 중간재· 최종재의 가격 인상을 억누르겠다는 것. 업계에선 정부의 가격 관여가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시장에서의 수급요인을 간과한 것으로 국제시장에서 다른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문제제기할 경우 정부의 물가안정 의지를 거부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돼 공식 반응은 자제한 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모습이다.


◇ "철강價 인상 자제".. 일주일 만에 또 압박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석유화학, 철강 등 원자재 공급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인상을 가급적 최소화해 달라"고 말했다. 이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철강업계 인상 억제 발언을 한 지 일주일이 채 안돼 나온 것.
 
최 장관은 지난 13일 열린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최근 설을 앞두고 원자재 가격과 국내 물가가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안정을 위해 철강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의 협조를 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지경부 장관과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정부 고위관료의 연이은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이 정부가 `물가안정종합대책`을 내놓은 직후 나온 것이기에 철강업계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철강제품의 가격 안정을 기반으로 중간재· 최종재 등 산업 전반의 물가 인상 압력을 억누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 `실적악화에 원자재가 인상`..업계 "현실 감안해 달라" 
 
정부측의 이 같은 가격 자제 요청에 대해 철강업계는 일단 `비현실적인 주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쪼그라들고, 원재료 가격이 크게 인상되는 등의 경영환경에서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항변.
 
실제 포스코(005490)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653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8.9%가 빠졌다. 이는 시장 기대치마저 밑돈 `어닝 쇼크`로 받아들여졌다. 정부의 잇따른 가격인상 자제 주문의 타깃은 업계 선두주자로서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는 포스코를 겨냥한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십분 공감하나, 가격 인상 자제 주문은 철강업계 현실을 고려치 않은 것"이랴며 "그 동안 원재료 가격 급등에도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분기 가격 조정을 도입하면서 원재료가격 인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철강업계가 올해부터 수시 가격 조정을 발표한 상황이기에 더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지난해말 포스코가 가격 발표 방법을 변경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업계 기준가격`이 되는 포스코가 올해 최소 네 차례 이상은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 업계, 정부 지나친 관여 부적절.."담합 인상주면 무역분쟁 소지도"

미국, EU 등 주요 수출국으로부터 수시로 가격을 모니터링 받고 있는 국내 철강업체들은 정부 관여가 무역분쟁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철강 가격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자칫 국제적인 무역분쟁을 야기해 자동차·전자 등 다른 유관산업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철강 가격은 전적으로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정부 관여로 가격을 낮추거나 수출 가격이 자국내 기업의 공급가격보다 크게 낮을 경우 철강제품 뿐 아니라, 자동차· 전자제품 등 유관 산업들도 수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해 저가 수출을 이유로 중국 강관업체들에게 최저 74%에서 최고 10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업계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출 경우 수출 상대국과 해외 경쟁업체들에게 소송의 빌미를 공식적으로 제공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격 인상 자제 주문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 논리 자체를 무시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책임져야 할 물가관리 부담을 행정적 수단을 동원해 기업에 떠넘기는 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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