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은행을 놀이터 삼게 된 것은 지난 2년동안 여기서 가입한 펀드로 짭짤한 재미를 본 뒤부터. 송금이나 이체 같은 '은행 볼일'은 모두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대신 '요즘 어느 펀드가 괜찮다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근무지 근처의 은행을 찾아 창구 직원을 괴롭(?)혀가며 이것 저것 물어본다.
덕분에 민씨는 직장동료들 사이에 펀드에 관해 모르는게 없는 '도사'로 통한다. 현재 투자한 펀드는 모두 10여개. 소득 대비 비중이 지나치다 생각하지만, 어차피 모아둔 게 별로 없는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같은 재테크를 고수할 생각이다.
펀드로 주식투자를 하면서 증권사가 아닌 은행 출입이 잦은 이유는 접근성이 좋고, 여러 운용회사의 펀드를 '고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이유 없이 증권사보다는 은행이 훨씬 친근하고 믿음도 간다"고 말했다.
◇ 은행이 바뀌고 있다..저축상품 중요도 줄고 투자상품도 부각
보수적 금융기관의 대명사인 은행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 업무이던 예금과 대출 업무는 점점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다. 반면 은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던 투자상품 등 '비(非)전통적인' 업무들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미국 등에서 80년대부터 일어났다. 미국 은행의 핵심업무이던 예대업무의 상대적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1980년에 46%에 달했던 개인 금융자산 중 예금 구성비는 1990년 38%로, 2000년에는 20%로 떨어졌다.
은행 예금증가율을 떨어뜨린 것은 실질금리의 하락이다. 이에 따라 은행의 예금 고객들은 확정금리형 금융상품에서 뮤추얼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자금을 이동시켰다.
미국에서는 이같은 자금이동 현상이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발생했고, 따라서 은행의 수신 증가세는 둔화됐다.
또 은행이 중개하는 간접금융비용이 2% 수준인 반면, 증권화를 통한 직접금융 비용은 0.5%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은행 대출비즈니스는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증권화를 통한 자금운용시장이 은행의 예금과 대출 시장을 지속적으로 잠식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은행들은 생존 전략을 찾아나설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은행들이 찾은 답은 인수 합병을 통한 덩치키우기와, 투자상품 판매 등을 중심으로 한 업무 다각화다.
지동현 국민은행 경제연구소장이 한국금융연구원 재직시 작성한 '저성장기의 은행 비즈니스 모델'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 우량은행들은 지난 20년동안 진행된 전통적인 은행업무 수요의 정체에 따라 고객층을 기업 위주에서 개인 등으로 다변화하고, 동시에 업무 영역도 카드사업 자산관리 보험 등으로 다각화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은행산업에서는 1970년 20%에 불과하던 총이익내 비이자이익 비중이 2003년에는 40%까지 커졌다.
◇ 웰스파고, '非전통' 은행 업무서 수익증가의 80% 올려
이같은 변신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은행이 웰스파고(Wells Fargo)이다. 웰스파고 은행은 각종 투자상품과 보험 등의 교차판매에 집중한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 성공을 일궜다.
이 은행은 수익증대의 80%를 기존고객에 대한 교차판매에서 얻고 있다. 2003년 기준 웰스파고 은행이 비은행부문에서 올린 비이자이익은 모두 123억달러로, 총이익 283억달러의 44%에 달한다. 또 비이자이익 중에서도 신탁과 펀드 등 자산관리상품과 보험·신용카드 수수료수익이 40%를 차지했다.
웰스파고는 전통적인 은행 업무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결제, 모기지, 투자, 보험 등을 '핵심상품군'으로 설정하고, 이런 상품을 효과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여러 금융회사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덕분에 웰스파고는 우리나라 국민은행과 비슷한 숫자인 2300만여명의 고객 숫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산규모는 지난해말 기준 4800억달러로 국민은행 자산의 두배도 넘었다. 또 이자부분 이익과 비이자이익의 합계는 329억달러로 한국의 은행 전체가 낸 것과 비슷한 규모를 냈다.
◇ 국내 은행도 변신 '진행중'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국내 예금은행의 대출자산 성장률은 한자리 숫자에 머물렀다. 대출자산만 늘면 이익도 따라 커지는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 역시 이자수익 대신 수수료이익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아, 수수료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수수료이익의 핵심은 보험 및 투자상품 판매다. `종합 자산관리`를 지향하며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국내 펀드 판매잔액은 220조원 중 가장 많은 펀드를 판 곳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을 통해 팔려나간 규모가 20조원으로 전체 판매의 10%에 육박했다.
최근 펀드의 대세를 이룬 적립식 펀드 판매 잔액을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9월말 기준 은행권의 적립식펀드 판매잔액 규모는 모두 18조4630억원으로 전체 판매잔액의 71.22%나 차지했다. 판매액 증가가 많은 곳도 1위 국민은행, 2위 신한은행, 3위 하나은행으로 상위를 은행들이 '싹쓸이' 했다.
국민은행이 올 3분기까지 투신상품을 팔아 올린 수수료 이익은 168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34억원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국민은행이 비이자부문 이익에서 올리는 수수료수익 7280억원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같은 변화는 영업의 최일선에서 고객을 만나는 '뱅커'들의 역할마저 바꿔 놓고 있다. 한 은행의 도곡지점장(PB지점)은 "최근 업무 중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고객마다 적합한 해외펀드를 골라주기 위해 수많은 펀드들을 비교 분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액 자산을 보유한 고객들은 불확실한 투자상품보다는 수익이 낮아도 확실한 상품을 선호한다"며 "그럼에도 이미 부동산으로 고수익을 올릴 시대도 갔고, 금리도 너무 낮아 어쩔 수 없이 펀드로 자산배분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3~4년간 국내 은행들이 수수료 수입을 강조해 왔지만, 주식시장이 계속 성장하지 못하면서 펀드판매도 한계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은행이 단순히 밀어내기식 펀드 판매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상품 구성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동현 소장은 "웰스파고가 성공 모델로 자리잡은 것은 단순히 예금에서 투자상품 위주로 상품 구성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이 적절히 배분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협찬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
* 후원 :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
*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