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행보 시동…‘반도체 초격차·품질 경영·직원소통’ 잡는다

최영지 기자I 2022.08.21 15:10:41

기흥캠퍼스 R&D단지 착공식 참석해 미래기술 강조
"대규모 연구단지 조성에 JY 과감한 결단 있었다"
GOS 사태에 세탁기 폭발사고…품질경영 시급
"조직문화 유연화 위해선 임직원들과 거리 좁혀야"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주 경기도 용인 소재 기흥캠퍼스 연구개발(R&D) 단지 착공식에 참석해 미래기술의 중요성을 언급함으로써 삼성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경영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주력사업인 △반도체 기술 초격차 수성에 이어 △세트제품 품질 정상화 전략 강구 및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 등이 회장 승진을 위한 관문으로 꼽힌다.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JY, 차차세대 기술 위해 연구단지 투자…“돈키호테식 경영 필요”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이 부회장은 지난 19일 착공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첫 대외 행보로 그룹 운영 기조의 최우선을 기술에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약 10만9000㎡(3만3000여 평) 규모로 건설되는 기흥 반도체 R&D 단지 조성을 위해 2028년까지 약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완공 시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DSR), 반도체연구소(SRD) 등 화성캠퍼스의 반도체 기술 연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대규모 연구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부회장이 이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수십조원의 비용이 투자되는 대규모 연구개발 단지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오너의 선제적이고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부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차별화되고 경쟁력 있는 핵심기술 확보가 중요하다고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겐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 달성의 과제도 있다. 결국 그간 전문경영인이 할 수 없었던 속도있는 의사결정이 관건이다. 기업분석전문 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가장 좋은 예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과감한 ‘돈키호테식 경영법’이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지금의 삼성전자가 있는 것”이라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목표를 세워 바로 행동에 옮기는 돈키호테식 경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투자와 기술개발 등 신속한 의사결정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이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직원들과의 간담회를 갖던 도중 직원의 부탁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애니콜 화형식’ 수준의 품질 고급화 시급”…조직문화 유연화도 과제

올해 스마트폰과 세탁기 등에서 연달아 결함이 발생하자 이 부회장이 반도체뿐 아니라 세트제품 품질경영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 때였으면 갤럭시 S22 시리즈의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사태나 세탁기 폭발 사고는 있을 수 없었다”이라며 “이 부회장은 문제의 원인을 다그치는 채찍질보다는 문제 해결·수습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 대국민 메시지를 내는 등 리더십을 발휘해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을 품질경영의 본보기로 거론하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이 1995년 당시 삼성 휴대폰인 애니콜 불량률이 11.8%를 넘어서자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한 것이다. 150억원에 달하는 휴대폰, 팩시밀리 등 15만대를 전량 폐기 처분한 결정에서 품질 고급화를 위해 뼈를 깎는 의지를 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때문에 이 부회장 역시 품질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식의 결단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일반 직원의 직급을 줄이거나 폐지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오너로서 임직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조직문화 유연화에 직접 나서는 모습도 기대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착공식 이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임직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는 직원들의 건의사항 등을 경청하고, 도전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조직문화 개선 방안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직원이 “출근 전에 아내에게 ‘부회장과 단독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며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그러지 마시고 영상 통화를 한번 하시죠”라며 직접 영상 통화를 하기도 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좋은 사람 모셔오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직문화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 등장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 자체가 혁명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며 “그룹 오너로서 대외적인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대내적으로 평사원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모습이야말로 다른 경영진이나 전문가가 아닌 오너가 할 수 있는 조직문화 유연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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