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한국판 뉴딜펀드’를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금융)이 3월 주주총회에서 임기만료되는 사내 및 사외이사 5명의 일괄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공기업 성격을 지니고 있는 성장금융이 정권교체 시기에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내외 이사 5명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 교체 전 알박기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성장금융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3월 임기 만료되는 성기홍 대표이사와 서종군 전무이사, 구정한·김영규·남상덕 사외이사의 후임을 선임하는 ‘이사선임의 건’을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이사회 결의 후 오는 3월 말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현재 대표이사 인선은 3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지난 8일 열린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강신우 스틱인베스트먼트 경영전문위원,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허성무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에 대한 면접을 진행했다.
정권 교체기라는 민감한 시기에 진행하는 사추위인 만큼 하마평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인수위원회가 구성되는 시기에 공기업 성격의 기관이 사내외 이사 인선을 진행하는 것은 의외라는 평가다. 임기 만료된 사내외 이사를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은 정권 바뀌기 전 현 정치권이 마지막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워낙 성장금융이 그동안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왔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성장금융은 낙하산 인사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당시 투자운용본부를 1, 2 본부로 나누고 정책형 뉴딜펀드를 총괄하는 투자운용2본부장에 황현선 전 청와대 행정관을 선임하기로 했지만, 황 내정자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기획조정국장을 역임한 인물로 운용업계 경력이 전무한데다 관련 자격증도 없다는 점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황 내정자는 자진사퇴했다.
성장금융이 지난 2월 임시주총을 통해 사내이사 1명과 사외이사 1명, 감사 1명을 선임한 것에 대해서도 대선을 앞두고 등기임원을 급하게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중 한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었던 투자2본부장 자리로 조익재 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을 선임했다. 30년 이상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던 터라 자격논란은 없었지만, 바로 전무로 선임하지 않고 1급 본부장으로 채용한 뒤 15일 만에 전무이사로 승진시키면서 사내이사로 등재한 선임과정이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사외이사에는 우리은행 출신으로 중국법인장과 우리아비바생명 대표를 지낸 김희태씨가, 감사에는 서윤성 법무법인 대륙아주 파트너 변호사가 낙점됐다.
성장금융 직원이 60여명인데 비해 등기임원 7명에 감사까지 임원수가 너무 많다는 시각도 있다.
성장금융은 지난 2016년 창업기업과 혁신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공동 운영하던 성장사다리펀드를 이어받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문 정부 역점 사업인 뉴딜펀드 운용을 총괄해왔다. 투자2본부가 바로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 운용을 담당하고 있다. 설립부터 KDB산업은행과 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 금융분야 공기업들이 출자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기업으로 여겨진다.
한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한국성장금융은 주인이 없는데다 다른 공기업에 비해 업력이 짧아 외풍에 더 휘둘리는 느낌”이라며 “임원 선임때마다 정치권 인사들이 배경으로 거론됐는데 한번 선임되면 임기가 있는 만큼 정권 교체 전에 인사를 서두르는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