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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 걸렸다”…자영업자 울리는 신종 보이스피싱 주의보

이소현 기자I 2022.02.06 14:17:14

음식점에 거짓으로 항의 전화해 피해금 요구
"소송·행정처분 할 것…언론 공개" 압박해
가게 문 닫을까 우려…"취약점 악용한 범행"
"최소한의 검증 거쳐야…보험 대응으로 대처"

[이데일리 이소현 김윤정 기자] 김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장염에 걸렸다”고 항의하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 주문한 고객인지 확인차 물었지만, 법에 정통한 사람처럼 “민사소송과 행정처분으로 장사를 못하게 하겠다”고 압박해왔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여파로 장사가 안돼 힘든데 영업마저 못하게 될까 두려웠던 A씨는 결국 합의금 명목으로 1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이렇게 식중독에 걸렸다는 전화 한 통으로 전국의 음식점 관련 자영업자를 공포에 떨게 한 이는 피해 고객이 아닌 신종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꾼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이미지투데이)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 4일 사기 등의 혐의로 40대 남성 B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B씨는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국 식당과 카페, 반찬가게 등 수백 곳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한 뒤 치료비와 피해 보상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리뷰가 영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실제 만들어 판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는 항의 전화에 피해 자영업자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B씨는 이런 점을 악용해 “녹취록을 언론에 공개해 가게 문을 닫게 하겠다”며 윽박질러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뜯어내는 등 피해액은 총 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자영업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줄이었다. 한 사장은 법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압박했고, “동네 장사를 그렇게 해도 되느냐”, “고객 열을 받게 해서 좋을 게 뭐가 있느냐” 등 무한정 쏘아붙였다고 토로했다. 다른 사장은 사기꾼의 협박전화를 받고 충격으로 쓰러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고, 매번 거처를 옮기는 등 미꾸라지처럼 행동해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성북서가 수사전담팀을 꾸리고 통신을 추적한 끝에 지난달 27일 경북 구미에서 탐문 수사를 통해 체포했다. 경찰은 검거 직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29일 “죄질이 중하고 주거가 부정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경찰은 사건 진술까지 확보한 건은 20곳 안팎인데 실제 피해는 100곳 이상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경찰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송사에 휘말리기 싫어 사건처리를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돈을 요구했으나 입금을 안 한 것도 꽤 많다”며 “앞으로도 고소·고발이 추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피해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관계자는 “점주들로부터 받아낸 돈 대부분을 생활비로 쓰고 도박으로도 탕진해 남은 돈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염에 걸렸다는 내용을 포털사이트와 언론에 퍼뜨린다고 하니 영업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불안감을 느끼는 취약점을 악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자영업자들을 허위로 속이기 쉬운 상황”이라며 “온라인상에서 잘못된 정보를 흘려서 영업에 지장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런 상황을 가해자는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신종 보이스피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합의금을 제시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병원진단 기록과 약 처방전 등 최소한의 검증을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보험회사 측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대처만 해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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