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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자 불길이 몰아쳤다"…실전 소방관 훈련 체험해보니

최정훈 기자I 2019.07.14 12:00:00

충남 공주 중앙소방학교 소방훈련 체험기
세계최초 화재 자동화 시설로 실전 같은 훈련 가능해
몰아친 불길에 떨리던 손도 훈련 후에 차분히 제압
훈련생들 "현장 투입돼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감 생겨"

지난 11일 본지 기자가 충남 공주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 내 복합고층건축물 화재진압 훈련장에서 고시원 내 화재를 연출해 체험하고 있다.(사진=중앙소방학교 제공)


[공주(충청남도)=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앞에 쇠사슬 있습니다! 바닥에 바짝 붙지 않으면 걸려서 못 넘어가요.”

높이와 폭이 1미터도 되지 않은 좁은 통로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칠흑 같은 공간에서 의지할 수 있는 빛은 앞사람 등에서 깜빡거리는 점멸등뿐. 머리에는 헬멧, 얼굴에는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마스크, 등에는 공기가 가득 찬 산소통을 착용했다. 온몸에는 방화복을 둘렀는데 장비 무게만도 25kg에 달했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자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이곳은 중앙소방학교 농연훈련장. 실제 현장같이 전기가 끊긴 화재 붕괴 사고 등을 연출해 훈련을 받는 공간이다. 충남 천안에 있던 중앙소방학교가 33년 만에 공주로 이사해 지난 1일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이곳은 농연훈련장 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인공 화재를 발생시키는 시설, 수난 사고를 대비한 파도 생성기, 강하 훈련 시설 등을 갖춰 재난 안전 전문가들을 길러 내고 있다.

◇“문 열리자 휘몰아치는 불길”…화재 자동화로 실전 같은 훈련

새로 보금자리를 찾은 중앙소방학교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2238억원 예산을 투입해 부지 42만㎡에 전체면적 6만 8075㎡·건물 39개동 규모로 지어졌다. △화재성상 △공동구 △복합고층건축물 화재진압 △도시탐색구조 △화학물질사고대응 등 각종 재난유형별 교육·훈련이 가능한 국제적 수준의 강의실과 훈련장, 생활관, 직원 숙소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화재성상과 공동구, 복합고층건축물 화재 진압 등 3개 훈련장은 중앙통제실에서 통제할 수 있는 화재 자동화 시설을 세계 최초로 마련했다. 실제 방화복과 산소통 등 25kg가량의 장비를 착용하고 이 시설을 갖춘 훈련장을 눈앞에서 보니 화재 진압 현장에 직접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먼저 복합고층건축물 화재 진압 훈련장에서는 지하 1층 노래방부터 각층 마다 상가, 주택, 고시원 등 지상 15층까지 다양한 화재 시나리오를 연출해 훈련한다. 특히 고시원 시설에서는 지난해 7명의 사망자를 낳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훈련 교관의 통제에 따라 고시원의 방문이 열리자 좁은 통로의 천장을 따라 불길이 휘몰아쳤다. 화재 초기 단계에 가연성 가스가 천장에 모이다 폭발해 방 전체에 불길이 도는 이른바 ‘플래시오버’ 현상이다. 눈앞까지 다가온 불길을 보며 4인 1개 조로 호스를 잡고 불길을 제압해나갔다. 손이 떨리던 처음과 달리 훈련을 진행할수록 절차에 따라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통신재난이라 불리는 KT아현지사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지하 공동구 훈련장과 지난 5월 발생한 충남 서산 유증기 유출 사고 같은 화학물질사고대응 훈련장도 화재와 유출 등을 연출해 생생한 훈련이 가능했다. 특히 소방 교관들은 화학물질사고의 경우 가장 위험하면서도 신속한 대응이 필요해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소방학교 관계자는 “화학물질은 심각한 화재 상황에서도 먼저 유출이 진행되는 곳을 막는 게 급선무인데 물질이 유출될수록 피해 규모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라며 “화재 진압보다 유출된 곳을 막는 것을 먼저 하다 보니 소방관에게 가장 위험한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레펠 훈련을 진행했다. 최대 4m 높이까지 인공 파도를 생성하는 훈련장에서는 수난 사고를 대비한 훈련과 드론을 이용한 붕괴 사고 대비 기술 훈련도 이어졌다. 또 학교에서는 소방령 등 현장 지휘 담당자를 대상으로 화재 현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연출해 지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충남 공주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 내 화학물질사고대응 훈련장에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연출해 시범을 보이고 있다.(사진=중앙소방학교 제공)


◇“훈련과 경험이 소방관 만든다”…내년부터 민간에도 개방

훈련을 받은 소방관들은 훈련을 통해 화재 현장 투입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윤수민 소방 간부 후보생은 “상황이 발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보다 침착한 판단력과 신속한 대응”이라며 “여성·남성 가릴 것 없이 실전 같은 훈련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안치운 소방 간부 후보생도 “플래시오버나 실내에서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백드레프트 현상 등을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실제 상황에서 위험요소를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철저한 훈련으로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제적 수준의 소방훈련 시설들은 내년부터 민간에도 개방해 특별교육과정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다중이용업 관계인, 소방안전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실습 위주의 화재 현장 대응훈련 중심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최태영 중앙소방학교 학교장은 “2022년까지 중앙소방학교 2단계 사업과 국립소방연구원 이전사업이 완료되면 세계 최고의 소방 연구단지로 거듭날 것”이라며 “민간관계자에 대한 전문교육 확대를 통해 재난대응 협력을 더욱 다져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본지 기자가 충남 공주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 내 레펠 훈련장에서 체험하고 있다.(사진=중앙소방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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