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에 200만원, 오묘한 향기 머금은 버섯

조선일보 기자I 2007.03.29 12:00:00

''땅속의 다이아몬드'' 송로버섯

▲ 송로버섯을 얹은 오믈렛. 오믈렛 안에도 송로버섯이 브리치즈와 함께 들었다. 오믈렛 전체에 송로버섯 향기가 배어있다.


[조선일보 제공] 별미(別味)로 꼽히는 음식은 대개 카리스마가 강렬하다. 누구나 쉽게 좋아하지 못할만큼 진하고 독특한 맛과 향을 지녔다. 그래서 처음엔 호불호(好不好)가 극단으로 갈리지만, 일단 소수의 극렬 지지자를 확보하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상황은 급변한다. 진귀한 맛으로 이미지를 굳힌 다음부터는 누구도 감히 느끼는대로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그 다음은 예정된 수순을 밟는다. 가격이 치솟고,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른바 ‘짝퉁’이 횡행한다. 전라도에서만 먹던, ‘냄새 고약한’ 생선이 어느 순간 전국적 유명세를 얻더니 이제는 칠레산이 흑산도산으로 둔갑하는 홍어의 경우를 떠올려보시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이 최근 송로버섯 20㎏, 4000만원 어치를 프랑스에서 들여왔다는 소식에 미식가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송로버섯을 이렇게 많이, 그것도 냉동이나 건조가 아닌 신선한 상태로 수입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서양 식자재를 국내 주요 호텔과 레스토랑에 공급하는 ‘구어메(Gourmet) F&B’ 서재응 상무는 “그 동안 한 해 수입된 송로버섯을 모두 합쳐야 10㎏을 넘을까 말까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양”이라고 말했다.

송로버섯. 영어로는 ‘트러플(truffle)’, 프랑스어로는 ‘트뤼프(truffe)’, 이탈리아어로는 ‘타르투포(tartufo)’다. 그러나 더 쉬운 말이 있다. ‘땅속의 다이아몬드’다. 이번 수입된 검은 송로버섯은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흰 송로버섯이 훨씬 더 비싸다. 지난 2005년 11월 런던 경매시장에서 1.2㎏짜리 최상급 흰 송로버섯이 11만2000달러(약 1억1200만원)에 팔리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흰 송로버섯은 1㎏에 350만원을 호가한다.
▲ 검은 송로버섯. 송로버섯은 콩알만한 것부터 어른 주먹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클수록 값이 나간다.

 
감자 같은 모양새… 매력적인 향

엄청난 가격에 비해 겉모습은 평범하다 못해 흉측하기까지 하다. 송로버섯을 땅에서 캐내면 영락없는 흙덩어리. 버섯이라지만 땅속 10~30㎝ 지점에서 자란다. 흙을 털어내면 시커멓게 썩은 감자처럼 보인다. 엄청 맛있지도 않다. 먹어보면 설컹설컹하면서 희미한 단맛이 느껴진다. 물에 젖은 호두 또는 잣을 씹는 기분이다. ‘이 맛 때문에 그 값을 치른단 말인가?’ 처음 홍어를 맛보는 사람이 느끼는 당혹감도 바로 이런 느낌일 듯.

송로버섯이 값비싼 진미로 취급받는 이유는 독특한 냄새 때문이다. 암모니아향을 자랑하는 홍어와 비슷하다. 송로버섯의 향은 축축한 흙과 나무뿌리, 사향 등이 뒤섞인 것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뭐라 규정하기 어렵다. 그냥 ‘송로버섯향’이다. 흰 송로버섯은 검은 송로버섯보다 냄새가 더 강하다. 2002년 7월 11일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송로버섯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된 시점을 17세기라고 규정한다. 처음에는 송로버섯에 최음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일단 유명해지자 특유의 냄새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별미로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송로버섯 냄새에 최음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성적 흥분효과가 있다는 페로몬과 화학적 구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테이블34’ 조리장 루카스 스풀(Spoel)씨는 “송로버섯 냄새는 발정기 수퇘지에서 나오는 성호르몬(sex hormone)과 거의 같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땅속에서 자라는 송로버섯은 사람이 찾기 어렵다. 프랑스에서는 송로버섯 자리를 찾아내는 데 암퇘지를 이용해왔다. 후각이 발달한 암퇘지는 송로버섯 냄새를 맡으면 극도로 흥분, 주둥이와 발굽으로 땅을 헤집어 송로버섯을 찾아낸다. 사람이 즉시 달려들지 않으면 송로버섯을 모조리 먹어치운다.

덩치 큰 암퇘지를 물리치기란 보통 어렵지 않다. 이탈리아에서는 돼지 대신 개를 사용한다. 개는 송로버섯을 돼지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으로부터 받는 칭찬, 그리고 애완견용 과자 같은 보상에 길들여져 송로버섯을 찾는다. 프랑스에서도 점차 돼지 대신 개를 이용하는 추세다.


가격 오르자 중국산 ‘짝퉁’ 나돌아

송로버섯은 원래 비쌌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격이 치솟은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계속된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땅이 말랐다. 송로버섯은 참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숲 축축한 땅에서 자란다. 채취량이 급감했다. 유명 산지인 프랑스 페리고르에서는 10년 전 한 해 1800톤씩 채취되던 송로버섯이 최근 50톤으로 급감했다.

이 틈을 비집고 ‘짝퉁 송로버섯’이 세계시장 정복에 나섰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위조한다’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엄밀히 말하면 가짜는 아니다. 유럽 본토 송로버섯의 학명은 ‘tuber melanosporum’. 중국산은 ‘tuber indicum’으로, 유럽 송로버섯의 사촌쯤 된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에서 많이 난다.

전문가들은 중국산이 “‘원조’ 송로버섯보다 확실히 향이 옅고, 씹으면 씁쓸한 뒷맛이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알아차리기 어렵다. 유럽산과 섞어놓으면 전문가조차 구분이 쉽지 않다. 가격은 1㎏당 30달러(약 3만원)로, 프랑스나 이탈리아산과 비교하면 100분의 1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페리고르 등 유럽 원산지에서 중국산을 유럽산으로 속이거나 진짜와 섞어 파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값싼 칠레산 홍어가 비싼 흑산도산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된다. 프랑스 정부는 벌금형과 구속형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가격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유혹에 넘어가는 식당이 많다.

송로버섯의 오묘한 풍미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요리는 오히려 단순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오믈렛에 얇게 켠 송로버섯을 올려 먹는다. 겨우 몇 쪽 얹었을 뿐인데, 오믈렛 전체에 송로버섯 향기가 짙게 밴다. 이탈리아에서는 올리브오일만으로 버무린 파스타(국수), 아니면 리조토(쌀요리)에 가늘게 썬 송로버섯을 얹어 먹는다.

▲ 송도버섯을 검사하는 루카스 스풀 "테이블34" 조리장

스풀 조리장은 “쌀이나 달걀을 함께 넣어두면 송로버섯에서 나오는 물기를 흡수해 풍미를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두면 생(生) 송로버섯은 2주 정도 보관 가능하다. 그 이후로는 진공포장해 얼렸다가 쓴다. 그 후로는 열을 가해 상하지 않도록 처리하거나 올리브오일에 담가둔다.


송로버섯 요리 즐기려면

테이블34에서는 송로버섯과 브리치즈를 넣은 오믈렛(4만5000원), 송로버섯과 푸아그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6만원), 송로버섯을 얹은 농어요리(6만원) 등을 선보인다.
 
행사기간은 송로버섯이 다 떨어질 때까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