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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사무처(검찰 격)는 지난 15일 한화그룹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혐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검찰 고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장 격)를 한화그룹에 발송했다. 공정위는 한화그룹의 관련 의견서를 받은 뒤 하반기 전원회의에 상정해 위원회(법원 격)의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공정위는 2015년부터 한화 계열사들이 전산 시스템 구축과 전산장비 구매와 관련한 일감을 김 회장의 아들 3형제가 지분 100%(김동관 50%, 김동원·김동선 25%씩) 를 보유했던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인 한화S&C에 부당하게 몰아줬다고 보고 있다. 한화S&C는 2018년 한화시스템과 합병하기 전까지 5000억원 내외의 매출액 절반 이상을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챙겼다. 공정거래법(제23조의2)에선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한해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한화 사례를 ‘정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또는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대기업이 사업시너지 차원에서 수직계열화를 하고 내부거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고 문제를 삼지 않는다. 다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가격에 거래하면서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득을 안겨줄 경우엔 제재를 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전산망 통합 또는 보안 차원에서 대부분 IT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회사들의 최대주주가 총수일가다 보니 공정위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부를 불법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은 원가가 대부분 인건비라 정상가격을 책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공정위는 IT서비스업체인 SKC&C와 SK그룹간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해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렸지만, 대법원에서 정상가격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했다며 패소한 바 있다.
공정위는 한화S&C가 비계열사와 거래한 내역 등을 바탕으로 정상가격 산정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한 행위’로도 제재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일부 거래내역의 경우엔 정상가격 산정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한화 측은 정상가격 산정과 관련해 공정위와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한 행위’는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할 경우엔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한화 측은 효율성 증대나 보안성 차원에서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공정위 사무처는 이례적으로 총수일가에 대한 개인 고발 없이 법인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만 제시했다. 3년에 걸쳐 수차례 조사에 나섰는데도 공정위가 총수일가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한화 관계자는 “심사보고서를 받은 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면서 “정상가격 산정 등 공정위와 이견이 있기 때문에 전원회의에서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2017년 10월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투자부문)과 한화에스엔씨(사업부문)으로 믈적 분할한 뒤, 한화에스엔씨의 지분 44.6%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2018년 9월 방산회사인 한화시스템(272210)과 한화에스앤씨를 합병했다. 현재 3형제는 에이치솔루션을 100% 소유하고, 에이치솔루션이 한화시스템 지분 13.41%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만 제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