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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진의 Tour & Culture)한국 국가 브랜드, 어떻게 높일 것인가? ③

정장진 기자I 2009.01.21 10:39:00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한류와 함께 한국의 고급 문화를 통해 한국을 알리려고 해야

한류는 대부분 영화, 연속극, 게임, 공연 등 대중예술을 통해 이루어진 현상이다. 대중예술은 갈수록 막강한 위력을 나타내고 있어서 평가와 전략 수립 등이 필요하고 국가적 지원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욘사마 열풍과 <대장금>은 가장 대표적인 한류인데, 한류의 핵심이 국가 지원이 아닌 콘텐츠의 질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두 사례는 국가의 지원이 어떤 부문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떤 경우이든, 문화 예술을 통한 국가 브랜드 끌어올리기에는 장기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며,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중 하나가 한국 소설과 시 등 문학 작품에 대한 번역 지원 사업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문학 공화국이다. 신문마다 신춘문예를 공모하고 시집과 소설이 수십만 권씩 팔리는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이 통계 숫자에 허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열기를 외국에 알릴 필요는 있다. 문학전집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도 한국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집에 문학전집 없는 집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산하에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이 빠진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얼마나 근시안적으로 주식회사처럼 단기 성과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일러주는 예이다. 물론 지금도 국가가 지원을 하고 있지만, 훨씬 큰 규모로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여러 대학에 전문 학과나 단과대학을 만들 수도 있다.

번역은 세계화 시대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지식을 줄 수 있는 분야다. 한국 문학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늘어나야만 한다.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그 기초는 국가가 놓아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질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바로 한국 작가의 전집 출간과 작가 연구다.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먼저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훌륭한 번역이 우선 되어야 한다. <설국>은 원작을 능가하는 좋은 번역이 없었다면 노벨상을 탈 수가 없었다. 한국학은 이 번역 사업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전세계에 퍼져있는 교포 2, 3세들 중에서 인문학 인력을 발굴 지원하는 사업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학 작품 번역도 한 가지 방법

앞서 말했던 작가나 시인의 전집은 기존에 출간된 작품들을 단순히 시기별로 모아 놓은 전집을 말하지 않는다. 출간 시점의 상황, 개작 과정 등이 낱낱이 파악된 전집이 되어야만 한다. 한국 작가로서 비중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인 김동리의 예를 들면, 서글프게도 그 유명한 <무녀도>에 대한 전집이 제대로 출간된 적이 없다. 그나마 전집도 출간되다 말았다. 이런 종류의 ‘제대로 된’ 전집이 안 팔리기 때문이다. 국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논문도 어느 판본을 기초로 했는지 모두 중구난방이다. 일제 강점기의 작품과 해방 후에 개작한 작품, <을화>로 개작되기까지의 과정이 낱낱이 밝혀진 전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다.

▲ 김동리의 무녀도가 실린 단편선

이 전집이 출간되면 <무녀도>가 흔히 말하듯이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대립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정확한 판본 확정, 작가의 가필과 퇴고 작업에 대한 추적, 소설 발표 당시의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정밀한 독서는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녀도>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대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경전이 없는 종교인 샤머니즘의 ‘무텍스트성’과, 지독할 정도로 텍스트에 의존하는 기독교의 ‘텍스트성’의 대립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즉 텍스트가 있는 종교와 없는 종교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대립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소설의 주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동리도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했던 것인데, 그 세계에 대한 경험을 글 이외의 것을 통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작가로서의 한계가 이 소설의 주제일 수도 있다. 그가 기독교 이외에 불교, 샤머니즘, 풍수설 등 여러 종교를 다룬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무녀도>의 주인공 모화와 그녀의 딸 낭이는 굿과 그림에 의존하는 문맹이거나 벙어리인 언어학적 불구자들이었고, 같은 이유로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아들 욱이는 교회 장로와 서양 목사를 만나 신식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적 문화에서 신동이라는 것은 어릴 때 천자문과 한글을 깨쳤다는 것을 말한다. 즉 욱이는 글을 읽을 줄 알았던 것이다.

소설 <무녀도>의 표면에 해당하는 초월적 신성의 존재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무녀도> 후반에서 다루어지는 기독교는 사실 기복 신앙과 이적에 초점이 맞추어진 잘못된 기독교이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초월성을 다룰 수가 없다.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문화적 차이다. 이런 이유로 <무녀도>는 서양인들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좋은 텍스트일 것이고 샤머니즘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서구 철학의 한 근원인 회의주의 속에서 서구인들을 갈등하게 했던 자연관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서구 문학과 사상에도 로고스, 즉 이성적 인식을 벗어나 움직이는 샤머니즘적 세계에 대한 천착이 있어왔다. 19세기 말 서구에서 르네상스 이후 확립된 현실재현의 미학을 벗어나 추상화가 일어난 것이나 대부분의 추상화가들이 신접의 경험을 한 이들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판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판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작품에 <무녀도>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국은 행복한 나라인데, 이 행복을 한국인 스스로 모르고 있다. 한국 문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으며 놀라울 정도로 풍요롭고 다양하다.

<무녀도>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경전이 없는 종교인 샤머니즘과 지독할 정도로 텍스트에 의존하는 기독교의 텍스트성의 대립이다. 이 인식은 한국의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도 핵심적인 주제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신도들이 찬송가와 목사나 신부들의 설교만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생활의 일부가 된 기독교는 교회의 대사회적 의무와 기능을 축소시키고 그 결과 대형화, 세습화를 낳았다.
 
즉 성경을 하나의 해석해야 할 텍스트로 보는 시각과 실천이 한국 교회에서는 미진했고, 이는 찬송가 위주의 새로운 개신교 풍습을 만들어 놓았다. 서구에서 개신교는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을 통해 성립된 새로운 기독교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투쟁의 역사가 생략된 채 이미 완성된 형태로 개신교가 들어왔다. 이는 성경을 자칫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문 같은 것으로 만들었으며 교회에 나가는 집에는 성경 구절을 크게 쓴 족자들이 하나씩은 모두 걸려있다.

한 프랑스 친구가 호텔 방에서 창 밖을 보았는데, 서울의 밤하늘에 꽂혀있는 엄청난 양의 붉은 색 십자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서 교회의 핵심에는 경전이자 분석과 해석의 대상으로서의 성경이 자리잡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이 부분을 등한시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무녀도>는 그래서 지금도 한국의 기독교 연구에 필요한 소설인 것이고 제대로 연구되고 번역되어만 하는 작품이다. 그러자면 판본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기초를 다지는 일에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전문 연구 인력과 철저한 행정 그리고 예산 지원 등 삼박자가 맞아야 할 것이다.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 조금 더 정성을 들여야

갑자기 문학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김동리라는 걸출한 작가의 제대로 된 전집이 아직 없다는 것은 한국에 아직 문화 예술 분야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러준다. 문화관광부 장관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은 문화의 전승 형식과 체계에 대한 인식에 있어 선진국과 많은 차이를 내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무당은 학교가 없이 모화에서 낭이로 내림굿을 통해 전해지지만 반면 기독교는 엄청난 수의 신학교를 거느리고 있는 군대 이상 가는 조직이다. 이 차이는 <무녀도>를 왜 문화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하는 지를 잘 일러준다. 한국의 근대교육제도 역시 기독교와 함께 유입되었다. 학교에서는 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글로 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사용 가능한 상태로 갈무리하는 방법과 그 필요성도 가르친다. 사전, 참고서지, 자료 수집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논문 표절은 바로 이 기본적인 작업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들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

다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루브르 혹은 런던의 국립미술관의 홈페이지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비교해 보라. 각국의 문화 예술 정보를 탐색하고 가공하여 여행, 문화, 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나는 여러 나라의 문화, 미술과 박물관들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매번 느끼는 것이 데이터 베이스 구축 작업에서 한국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를 알면 수치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다. 루브르는 들어갈 때마다 찬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교에서 미술을 강의할 때마다 루브르 홈페이지를 그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때론 데이터의 깊이를 비교하는 리포트를 숙제로 내기도 한다. 용산에 들어선 국립중앙박물관, 많은 이들이 수고를 하고 있고 옮긴 지 얼마 안되어서 자리를 잡는 중이겠지만,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 더욱 힘을 써야 될 것만 같다. 건물 규모를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어느 나라 박물관 못지 않은 허우대를 자랑한다.
▲ 아트프라이스 연감

▲ 아트프라이스 연감 표지
미술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알고 있겠지만, 아트프라이스라는 회사가 있다. 인터넷 사이트도 운영하는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거래된 미술품 가격과 거래 일자 등을 목록으로 작성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놓았다. 한국 작가들의 해외 시장에서의 거래 정보도 모두 들어가 있다. 우리 회사도 예산이 되는 대로 한 열 권 정도를 사 모았지만 권당 수백만 원이 넘는 고가여서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데이터 베이스의 힘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100% 아날로그인 데이터 수집과 정리에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최근 한 항공사에서 여승무원들에게 단기 예술교육을 시켜 기내에서 박물관과 미술에 대해 승객들에게 설명을 해준다고 하는데, 그 어느 선진국에서도 이런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 항공사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기도 하다. 잘하고 있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생각은 다르다. 미술과 박물관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다. 사조 이름이나 외우고 에피소드나 몇 개 들려주는 식이라면 말이다.

한국에서 문화 예술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외국인들이 보았다면, 그중에 미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이라도 있었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이다. “비행기 여승무원이 미술 강의를 하는 나라이니 한국은 문화 예술이 발달한 나라구나”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도 있겠지만, “한국은 여승무원들이 별일을 다하는 나라구나. 승객 안전에 신경 쓰랴, 커피 타주랴, 미술 이야기하랴……”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엄청난 데이터 베이스를 갖추고 있어서 상업적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조차 이런 식으로 문화 예술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 누가 여승무원들이 들려주는 미술과 박물관 이야기를 신뢰하겠는가. 나라면 여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나 제대로 하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박물관 홈페이지를 방문할 것이고, 한국 비행기를 탈 것이다. 정작 깊이 있는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없고, 승객 안전에 신경 써야 할 승무원들이 미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국은 참으로 특이한 나라다. 국가 브랜드는, 외국인들이 한국과 만나는 일상적 공간 관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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