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칭다오에 설립된 국가고속열차기술혁신센터에 이어, 2018년 베이징에 출범한 이곳은 자동차 산업 최초의 국가급 기술혁신센터다. 공간 자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의 실험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했다.
완성차 환경모의시험실에서는 최대 4.5톤급 차량을 대상으로 변속기, DC/DC 컨버터, 배터리 모듈, 냉난방 시스템 등을 완성차·시스템·부품 세 단계로 나눠 효율을 측정한다. 옆 건물의 완성차 에너지효율개발실험실은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중국에서 처음으로 전체 온도 범위를 아우르는 전용 실험실이라고 했다.
더 눈에 띈 건 사람과 기계의 접점이다. 자동차 디지털 체험 실험실에는 아이트래킹 장비와 생체신호 센서, 손가락 궤적 추적 소프트웨어가 갖춰져 있어 주행 중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화면을 몇 번 터치했는지, 어느 순간 피로를 느꼈는지까지 측정한다. 도로 위 행인과 차량, 자전거를 크기와 속도감까지 실시간으로 재현하는 시뮬레이터도 있었다.
검증은 완성차 단계에서 끝나지 않았다. 배터리 소재 연구·검증 플랫폼에서는 원료 가루를 섞고 굽는 전 과정을 거쳐 소재 자체를 직접 만든다. 이곳에서 개발한 고체전해질(LLZO, LATP) 소재는 이미 소규모 시험생산을 마쳤고 성능도 중국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소재 단계까지 국가 플랫폼이 직접 관여하는 것이다.
톈 부총재가 마지막에 보여준 자료 한 장에 그 규모가 담겨 있었다. 이 센터의 검증 플랫폼은 누적 40여 개 주력 차종을 테스트했다. 그 가운데 5건은 자체 연구 과제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장기 기술서비스 협약을 맺은 기업 목록에는 BYD, 치루이(Chery), 베이징자동차, 리샹, 샤오펑뿐 아니라 바이두 아폴로(자율주행), 메이투안 무인차(배달), 디디추싱(차량 호출 서비스)까지 이름을 올렸다. 자율주행과 배달, 차량 호출까지 자동차 제조를 넘어선 산업 지형이었다.
한국에도 한국자동차연구원처럼 자동차 연구개발(R&D)과 시험·인증을 지원하는 전문기관이 있다. 차이는 기관의 유무보다 운영 방식에 있었다. NEVC는 완성차와 부품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을 하나의 공동 플랫폼으로 묶고, 경쟁 이전 단계의 공통기술과 검증 인프라를 함께 구축한다. 시장에서는 경쟁하되, 그 경쟁에 필요한 기반은 함께 만드는 구조다.
개별 기업이 각자 구축하기 어려운 고비용 검증 환경을 공용 플랫폼으로 제공하면 중복 투자는 줄고 개발 시간도 짧아진다. 새로운 부품과 기술은 이곳에서 실제 차량에 탑재해 시험하고 검증한 기술은 다시 산업 현장으로 넘어간다. 이 플랫폼은 지금까지 20억위안(약 405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했고 이를 지렛대 삼아 70억위안(약 1조4200억원) 넘는 사회자금을 끌어들였다. 기업 하나의 비용을 국가가 대신 지는 구조가 아니라 개별 기업이 반복해서 부담할 비용과 시행착오를 산업 전체가 나누는 구조다.
우리는 산업 경쟁력을 기업 간의 경쟁으로 알고 있다. 중국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경쟁의 단위로 설계하고 있었다. 배터리 분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광저우의 국가신형에너지저장혁신센터는 BYD, 화웨이디지털에너지 등을 포함한 기업·대학·연구기관 등 150여 개 단위를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고, 이 연합체는 전국 신형에너지저장 분야 국가급 혁신 플랫폼의 85% 이상을 포괄한다.
고속열차에서 자동차, 배터리로 이어진 이 방식은 국가가 틀을 만들고 산업이 함께 구축하는 중국식 인프라 공유 전략이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만 그 경쟁이 시작되기 전, 반복해서 치러야 할 시행착오와 시간의 일부를 이미 함께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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