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현장 목소리 '실종'된 탄소중립 시나리오

함정선 기자I 2021.10.04 16:08:39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5일 열리는 산업부 국감은 ‘에너지 국감’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탈원전과 전기료 인상, 신재생에너지 등 이슈가 서로 얽혀 다양한 공방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 같은 이슈는 사실 모두 국감의 단골 소재인긴 했으나 올해는 그 관심이 남다르다. 세계적으로 탄소중립과 친환경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이라서다.

아니, 사실 재계와 기업 현장에서는 ‘관심이 커졌다’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탄소중립이나 친환경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올 들어 앞다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외치고,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잇따라 선언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에는 현대자동차부터 SK그룹,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직접 모여 수소서밋을 발족하고 그룹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불안감은 깊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 면적이 좁고 산악지형 비중이 커 대규모 풍력, 태양광 발전 단지 구축이 쉽지 않고 지리적으로도 일조량이나 풍량 등 신재생 에너지 자원 역시 풍부하지 않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탄소중립의 핵심인 수소와 같은 재생에너지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달 8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국내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언젠가부터 해외 입찰에 참여할 때 문항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재생에너지 사용량과 같은 탄소저감에 대한 노력”이라며 “기술력에는 자신이 있는데 탄소저감 영역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등 아직 제대로 내세울 것이 없다 보니 최근에는 입찰 때마다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하기 위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NDC 상향을 통해 국제적인 ‘기후악당’ 오명을 벗을 수 있다면 수출 기업에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속도와 인프라다.

2030년까지는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탄소저감을 위한 기술 투자 등을 진행할 여력이 되지 않는 기업들은 손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목표를 따라잡기 위해 기업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감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간담회 등을 통해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지만 한편에서는 정부가 다음 달 NDC를 40%로 확정해 발표하리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현장의 목소리는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산업부 국감에는 포스코, SK E&S와 같은 탄소중립과 긴밀하게 연관된 기업들의 수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언젠가부터 국감 현장에 기업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것을 두고 비판이 많다. 정쟁에 이용하거나 호통·망신주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에너지 국감에서는 커진 관심만큼이나 달라진 광경이 필요하다. 정부를 감시하는 국회 본연의 역할을 살려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현장의 생생하고 진정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대안을 찾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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