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이 아니다, 아트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5.29 12:12:00

멀티 컬러·건축적 장식

[조선일보 제공]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구두가 없었다면 사라 제시카 파커가 지금 같은 패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여성들의 수집 본능을 자극하는 구두. 하지만 검정색이나 흰색 구두만 고집하는 당신은 이번 시즌 '패션 테러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 세가지 색 이상이 혼용된 멀티 컬러 슈즈나 장식적인 디테일이 눈에 띄는 건축적인(architectural) 샌들, 굽에 포인트를 준 아찔하게 높은 킬러 힐(killer heel) 등 이전보다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구두가 눈길을 유혹한다. 캐나다의 패션 전문가인 바바라 앳킨은 이를 두고 "사람들이 힐 아트(heel art)에 무섭게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워싱턴 포스트의 패션 사이트인 '트렌드 스포터'는 최근 "올 시즌 유행인 네온 컬러, 꽃무늬, 조각적인 디테일, 투명한 디자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것이 구두"라고 꼽았다.

▲ 화려한 조각이 특징인 프라다의 플라워 힐 메리 제인

■이국적인 디테일로 승부한다.

에르메스의 수석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올해를 '인도의 해'로 정하고 이국적인 그들의 풍경에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색감을 불어넣었다. 눈에 띄는 건 페이즐리 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샌들과 슬리퍼. 그 동안 의상은 화려했으면서도 신발만큼은 가죽의 질감을 잘 살린 미니멀한 스타일에 주력했지만, 이번 시즌은 의상 못지 않게 화려한 신발을 내놓고 있다. 에르메스의 정주연 차장은 "최근 동양적인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동양의 독특한 색감에 매혹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예년보다 더 과감해진 색으로 시선을 끄는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 메탈 가죽 스트랩이 특징인 입생 로랑의 사유리 샌들

한국적인 색동을 연상시키는 굽의 디테일로 국내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제품도 있다. 샤넬의 '광택이 나는 송아지 가죽의 멀티컬러 플랫폼 힐'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 들여놓은 상품이 모두 매진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또 '체인이 달린 트위드 소재 샌들'의 경우 샤넬 특유의 트위드 패턴으로 장식된 손가락 만한 미니 가방이 달려 있어 눈길을 끈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아 한층 더 섹시한 스타일로 변신한 펜디 역시 여러 색깔의 끈으로 엮인 웨지 힐과 스틸레토 힐을 선보였다. 

▲ 샤넬의 송아지 가죽 플랫폼 힐

■이제 조각품을 감상할 시간!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꼽은 '색감의 여신' 미우치아 프라다의 이번 시즌은 단순한 색감의 조화를 뛰어넘는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축 작품이 연상되는 조각을 아찔한 굽에 적용시킨 것이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의 패션 칼럼니스트 수지 멘키스는 "괴물이 등장하는 동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다양한 꽃과 동물 문양으로 장식된 프라다의 샌들이 매장에 나온 순간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들 정도였다"며 "더 신비해지고 더 극적인 장식이 조각될 수록 매출은 급상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프라다의 김지현 대리는 "신발장에 진열할 때조차도 조각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며 "멀티컬러 패턴의 가죽으로 패션의 포인트를 준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 무지개가 떠오르는 펜디의 웨지


공사판의 임시가설물인 스케폴딩을 연상시키는 장식적인 굽 역시 디자이너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르니와 질 샌더가 그렇다. 펜디와 스텔라 매카트니는 유리 탑을 보는 것 같은 투명한 굽을 만들어냈다. 패션 전문가 바바라 앳킨은 "최근 구두 디테일이 화려해지는 건 여성들의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인도풍의 페이즐리 무늬가 돋보이는 에르메스 슬리퍼


■글래디에이터 스타일도 여성스럽게

최근 영화 홍보에 나섰던 귀네스 팰트로는 지방시와 쥐세페 자노티의 전사풍 샌들로 그 누구보다도 주목 받았다.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고대 로마인들이 신었던 낮은 굽에 가죽 끈으로 발목을 감아 올린 스타일로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 올슨 자매 등이 신어 크게 유행시킨 아이템이다.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의 대표 주자격인 크리스챤 디올의 '블루 엔젤' 샌들을 필두로 앞다퉈 전사 스타일을 내놓고 있다. 지난 해부터 조금씩 등장했던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이 최근 들어서는 킬러 힐과 합쳐지거나 다양한 금속 장식으로 멋을 부리고 있다.

▲ 전사적 느낌과 섹시한 느낌을 함께 담은 디올의 블루 엔젤 샌들


입생로랑의 히어로 샌들은 어깨 견장을 연상케 하는 금속 장식이 돋보인다. 입생로랑의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 팔라티는 "다양한 색상의 별과 각종 아이콘의 신화적인 이야기를 담아 자유로운 여성상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 입생 로랑 히어로 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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