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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파생상품 탈 쓴 '그림자 부채' 10조…건전성 뇌관된 P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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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기자I 2025.11.05 08:25:02

[신종 자금조달 PRS의 그림자]②
자본시장 ‘시한폭탄’ 된 PRS...3년 새 109배 증가
SK·LG·롯데, 막연한 주가상승 기대 걸고 거액 조달
국내증시 조정 오면 대기업 ‘휘청’
‘파생상품’ 탈을 쓴 대출 빚 PRS, 공시도 ‘깜깜이’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국내 기업들이 증권사를 통해 자회사 지분 등을 담보로 빌린 주가수익스왑(PRS)자금이 불과 3년 사이 1만% 넘게 폭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유상증자 등의 심사 문턱을 높이자 규제 사각지대에서 회사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기업이 급증한 셈이다. PRS가 기업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아 대부분의 주주들이 실상을 알 수 없는 ‘그림자 부채’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시장 건전성의 뇌관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파생상품’ 탈을 쓴 대출...주주 기만한 빚 PRS, 3년새 109배

4일 이데일리가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금융감독원에 의뢰, 국내 증권사를 전수조사해 확보한 PRS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약 992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PRS 계약 총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10조8598억 원으로 늘었다. 3년 새 약 1만847%, 109배 폭증한 셈이다.

계약 건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2022년 2건, 992억원에 불과하던 신규 계약이 지난 2023년 12건, 4797억원으로 증가했고, 2024년에는 43건, 4조1436억 원, 2025년 9월 말에는 43건, 7조148억 원 규모로 급증했다.

최근 불과 3년 사이 100배 이상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규제 공백이 이어질 경우 자금조달 수단으로 더욱 무분별하게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실제로 복수의 대기업들이 조 단위 PRS 조달을 추가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데일리의 의뢰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확보한 국내 증권사 PRS 총 계약 현황 전수조사 자료 (자료=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 금융감독원)
특히 9월 말 잔액 기준 전체 PRS 계약의 3분의 2가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다. 전체 70건 중 비상장 자회사 지분 기반이 30건으로 총 7조1838억 원(66%)에 달했다. 상장 자회사 지분은 11건에 1조7851억 원, 자사주 담보형은 3건 642억 원으로 집계됐다.

만기구조 역시 단기보다 중장기 비중이 압도적이다. 전체 잔액(10조8598억 원) 중 1~3년 만기가 7조7512억 원(71.4%), 3년을 초과하는 장기계약도 2조9767억원(27.4%)에 달했다. 1년 이하 단기계약은 1.2%에 불과했다. PRS가 단순히 파생상품을 통한 단기적 헤지 수단이 아니라 사실상 2~3년 주기의 대출성 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5조9514억 원으로 전체의 54.8%를 차지했다. 지주회사 비중은 18.5%, 서비스업은 3.8%로 집계됐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금융사 간 보안 유지를 이유로 증권사별 PRS 계약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PRS는 통상 증권사가 제공하는 상품으로,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신한투자증권·대신증권·메리츠증권, 삼성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주요 공급사다.

이데일리의 의뢰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확보한 국내 증권사 PRS 총 계약 현황 전수조사 자료 (자료=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 금융감독원)[그래픽=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소액주주들에겐 사실상 눈속임...회계기준 정비 시급


PRS는 주가에 따라 수익과 손실을 주고받는 파생계약상품이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이 이익을 얻고, 떨어지면 손실을 메워줘야 하는 구조로, 경제적 실질상 조건부 대출에 가깝다.

예를 들어 기업이 1조 원을 PRS로 조달했을 때 3년 뒤 주가가 오르면 그만큼의 차익이 발생하지만, 그 이익은 증권사가 아닌 기업이 가져간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증권사 손실을 기업이 대신 부담해야 한다. 증권사는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며, 자금 조달의 대가로 주가 변동 위험을 대부분 기업에 전가한다. 결국 실질적인 리스크는 기업이 떠안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겉보기에는 ‘부채 없는 자금조달’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일반 투자자 눈에는 PRS로 거액을 조달한 기업이 여전히 건전해 보일 수 있다. PRS는 법적으로 ‘주식매매계약’의 형식을 취해, 돈을 빌려도 회계상 부채(차입금)로 인식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일정 기간 뒤 되사거나 차액을 정산해야 하지만, 형식상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부채비율 산정에서 빠진다. 증권사들은 “부채비율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기업을 설득해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기업은 부채비율 상승 부담 없이 자금을 끌어오는 상황이다. 재무건전성이 떨어져 시장 우려를 받는 기업일수록 PRS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주가부양 정책으로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향후 국내외 여건에 따라 조정국면에 접어들면 PRS 정산 과정에서 마진콜(추가담보요구) 충격이 대기업을 덮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비상장 주식 기반 PRS의 경우 주관적 평가 여지가 상당한 ‘공정가치평가’를 통해 기업이 임의로 조정할 여지가 크지만, 금융시장 전반이 냉각됐을땐 방어가 어려워진다. 마음 놓고 조 단위로 빌렸던 PRS 자금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PRS의 경제적 실질이 ‘부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종문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계약구조상 경제적 실질을 따져보면 가격변동분에 투자해서 이익을 취하는 파생상품투자가 아니라 담보대출 성격에 가깝다”며 “계약별로 다양한 구조가 있겠으나, 대부분 국제회계기준인 IFRS에 비춰봐도 차입거래(부채)로 봐야 하는 건이 많을 듯 하다”고 말했다.

유동수 의원은 “PRS는 겉으로는 자산 매각처럼 보이지만, 주가 변동에 따른 손익만 교환하는 구조여서 회계상 부채·자본 구분이 모호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이로 인해 기업 재무 상태가 실제보다 건전하게 보이거나 투자자들이 정확한 위험 수준을 파악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주가 현금 조달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PRS 등 복합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거래 기준 및 공시 의무를 엄격히 해야 한다”며 “기업의 재무 상태를 투명하게 공시하고 회계 처리 기준을 명확히 하여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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