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약하다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직을 맡으며 유력 대권 잠룡으로 꼽혔지만 성추행 의혹과 극단적 선택, 조문과 장례를 둘러싼 논란 등 마지막 모습은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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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 수장에 오른 그는 특유의 소탈한 성격과 결단의 리더십으로 내리 3선에 성공했지만, 임기 만료를 2년여 앞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는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3일이다. 그의 유언대로 유골은 본인의 고향이자 선친의 묘가 있는 경남 창녕에 뿌려질 예정이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처럼 시장 시절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재생 중심의 도시개발, 노동·청년·기후·환경분야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아 중앙정부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과를 인정을 받았다. 다만 다소 실험적인 정책과 파격적 행보에 비해 손에 꼽을 뚜렷한 치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사후에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됐다. 성추행 의혹으로 고소된 직후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때아닌 `조문 정국(政局)`이 펼쳐지고 있다. 여당 측 인사들의 조문과 1만명에 육박하는 시민들의 분향소 방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등 일부 야당 의원은 박 시장 죽음에 대해 `비극과 진실은 별개`라며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가족장이 아닌 공공성이 강한 서울특별시장을 치루는 것을 반대하며 빈소 조문을 거부했다.
여론도 양분되는 양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5일장으로 서울특별시장을 치러선 안된다`는 청원이 이틀 만에 50만건 동의를 넘었고 일부 보수단체는 서울특별시장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여성단체들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경계하면서 박 시장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6일, 민간7시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박 시장은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말을 소개했다. 익숙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다만 그의 죽음이 국민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계기가 되는 건 여전히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