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러 가는 길 ‘눈부신 설경’

경향닷컴 기자I 2010.01.13 12:00:00

‘겨울 드라이브 환상코스’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개심사·운산목장

[경향닷컴 제공] 겨울 드라이브 코스 하면 강원도 7번 국도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충남 서산도 괜찮다. 마애삼존불상에서 618번 지방도와 647번 지방도를 타고 개심사 가는 길이 아름답다. 해미읍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겨울 목장도 아름답고 개심사 설경도 압권이다. 하루 나들이 코스로도 가능하다.

 

차만 막히지 않는다면 서산IC까지는 서울 도심에서 2시간30분이면 간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은 마애삼존불상 바로 앞에 있는 용현집에서 먹었다. 어죽집인데 민물고기를 푹 삶아 뼈를 발라내고, 밥과 소면을 넣고 끓인 것이다.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동행한 여행작가 김산환씨는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천렵음식”이라고 했다. 귀퉁이가 여기저기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내놓는다. 5000원. 값도 싸다.

용현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개울 건너 5분이면 마애삼존불상까지 갈 수 있다. 반듯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휘어진 돌계단을 올라서면 마애삼존불상이 나타난다. 마애불은 2007년 보호각을 철거했다. 보호각은 그 말뜻과는 달리 통풍이 잘 되지 않고 내부와 외부의 기온차로 결로현상이 생겨 오히려 마애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게다가 보호각 내에선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마애불의 표정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서산 마애불은 위엄 있고 무게감 있는 여느 돌부처와 달리 개구쟁이처럼 해사하게 웃고 있다. 그 표정이 너무 밝아서 덩달아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애불을 보고 나와서 647번 지방도를 타면 개심사 가는 길이다. 운산면 목장지대 사이로 놓인 이 길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사진작가들에겐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목장은 모난 곳이 없어서 좋다.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가 아니라 완만한 곡선의, 봉긋한 언덕들이 겹쳐진 형국이다. 세상이 하도 각박하고 매몰차서 완만한 곡선의 목장에 눈길이 많이 간다. 풀 뜯는 소들에게 그늘을 줄 요량으로 한두 그루 남겨놓은 나무나 줄지어 늘어선 방풍림도 예쁘다.

비록 목초지 주변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실 만한 변변한 휴게소나 찻집 하나 없지만 목장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하다. 목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철제 펜스 옆에 차를 댈 수 있도록 주차 공간을 만들어 놓아 차를 세우고 촬영을 할 수는 있다.

운산면의 목장은 1960년대 후반 김종필씨가 조성했다. 440만㎡로 꽤 크다. 삼화목장, 운산목장, 서산목장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정식 명칭은 농협 가축개량사업소이다. 국내에서도 5% 내에 드는 우수 종모우를 길러내는 곳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냥 김종필목장이라고 불러왔다. 봄이면 푸른 능선을 따라 아름드리 벚꽃이 핀다.

개심사는 목장지대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된다. 사실 산사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릴 때는 한겨울이다. 봄, 여름, 가을은 탐방객으로 늘 북적인다. 길까지 잘 뚫려 산사 어귀엔 대형버스가 탐방객을 수시로 부려 놓는다. 그나마 눈이 덮인 겨울엔 사위가 고요해서 절에 온 느낌이 든다. 솔숲을 오목오목 짚어가야 절에 닿는다. 사람마다 개심사의 멋을 저마다 달리 뽑을 수 있겠지만 문화재 전문가가 아닌 장삼이사의 눈에도 아름다운 것은 외나무 다리와 못생긴 기둥이다.

속가를 지나 불가로 건너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외나무 다리를 걷는 기분이 좋다. 세상은 고요하고,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내며 부처에게 가는 길. 행여 눈 덮인 다리에서 미끄러질세라 연못만 보고 가다 고개를 들면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잎이 무성했던 여름엔 눈길조차 받지 못한 감나무였는데…. 요즘은 꽃처럼 빨간 까치밥을 달고 있다. 
▲ 운산면 목장지대
감나무 옆에 있는 범종각 기둥은 곧게 뻗은 것이 하나도 없다. 개심사는 이래서 좋다. 못난 나무도 절집의 기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말이다. 세상에 가슴에 옹이 박고 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고, 제 몸을 굽히지 않고 버텨온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개심사는 못난 놈들도 다 부처의 집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실제로 멋을 낸 법당도 별로 없다. 고급 양복이 어색해 보이는 깍두기 조폭처럼 무리하게 키운 법당은 없다. 요사채는 70~80년대쯤 지어진 것처럼 낡았고, 화장실은 ‘푸세식’이다.

똑, 똑…. 먹기와에 쌓인 눈이 녹아 한 방울씩 떨어지며 절 마당을 쪼았다. 산사의 고요함을 깨는 물방울 소리가 풍경 소리 못지않게 아름답다.

개심사를 나와 해미읍으로 달려가면 읍성이다. 해미읍성은 잘 보존된 석성이며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구한말 수많은 순교자들이 해미읍성에 끌려와 처형됐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고속도로밥’ 먹는 것보다는 짬뽕 한 그릇이라도 먹고 가는 게 낫다. 해미읍성 앞 영성각은 이 일대에선 꽤 유명한 중국집. 인터넷에 영성각을 치면 “나도 거기 다녀왔어요”란 여행기가 줄줄 뜬다. 해미IC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다.

▲여행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에서 빠져서 해미IC로 돌아가거나 해미IC에서 빠져서 서산IC 방향으로 가도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입장료가 없다. 서산 개심사 www.gaesimsa.com

*마애삼존불 주변에 매운탕집이 많다. 용현집(041-663-4090)은 마애삼존불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집으로

29년째 어죽을 팔고 있다. 해미읍성 정문 앞을 등지고 앞으로 50m쯤 가다 보면 왼쪽에 영성각

(041-688-2047)이 보인다. 해미읍사무소 앞에 있는 해미쌈밥(041-688-5084)의 우렁된장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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