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미국 유학 시절 내가 몰던 차는 79 년 형 폰티악이었다. 오래 됐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그 차는 엔진오일이 샜다. 그래서 기름만큼이나 엔진오일을 많이 먹었다.
트렁크에는 늘 엔진오일이 한 박스씩 담겨 있었고 후드를 열면 기름이 샌 지저분한 엔진이 보였다. 나는 그런 모습에 아주 익숙했다. 처음으로 내 차를 소유하게 되었던 나는 모든 자동차가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미제차를 가진 친구들도 늘 엔진오일이 새는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이런 현상은 아주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일제 차는 달랐다. 엔진주변이 깨끗하고 엔진오일이 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의 까다로운 고객들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제차의 엔진오일이 새는 것은 그만큼 미국 고객들이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고객이 명품을 만든다.
우리는 리더십에 대한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고,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고, 부하직원이 미워하는 상사는 어떤 사람이고 등등… 하지만 부하직원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리더십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팔로워십이다. 좋은 부하가 될 수 있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년시절에 리더십과 팔로워십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놓아야 한다.
해방 후 긴 세월을 우리는 리더십의 부재를 탓하면서 보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나타날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리더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타난 리더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또 다른 리더를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
도대체 우리를 삶의 질곡에서 구해줄 리더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맘에 드는 흡족한 리더를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가 눈이 나빠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사람은 아예 나타나지 않으려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수준에 맞는 리더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자연 법칙이다. 배우자도 그렇다. 결혼 후에 눈이 삐었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가진 안목만큼 배우자를 고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수준이 높다면 말이 안 되는 인물은 리더가 될 수 없고 일시적으로 리더가 되었다 하더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리더십만큼 중요한 것은 팔로워십이다. 유능한 지도자 밑에서 역량 있는 부하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좋은 직원들이 멋진 상사를 만들 수도 있다.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리더십이란 한 조직체에 끼치는 영향력으로서, 그 단체로 하여금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그 조직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어떤 특정한 위치에 있는 한 사람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따르는 이(follower)들도 분명히 리더십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미 공군사관학교 리더십 강사 리처드 휴즈의 말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그것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좋은 포수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허먼 밀러의 맥스 디프리 회장의 얘기이다.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간 청년들은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청춘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제대로 된 팔로워인가? 좋은 팔로워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가? 좋은 팔로워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맡은 전문 분야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감당하고 있는가? 리더가 잘못하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판 외에 또 뭐가 있는가? 내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그런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남을 흉보는 일이다. 남을 비판하는 일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고 고도의 지적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느끼는 대로 떠들고 내뱉으면 되는 것이다. 남을 비판한다고 내가 우수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칫 하다가는 욕하면서 닮는다는 치명적인 얘기를 들을 가능성마저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좋은 부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상사를 좋은 리더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