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멤버십 연례 총회에서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영역만큼이나 경제·금융 영역도 긴급한 순간인데, IMF와 세계은행(WB)은 행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데일리는 이번 총회에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화상으로 참석했다.
|
서머스 교수는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사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40년간 봤던 것 중 가장 복잡하고 이질적”이라고 토로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초강경 긴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의 극한 대립 등을 거론하면서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과 다른 선진국이 인플레이션과 싸움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신흥국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일부를 언급하면서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때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며 미국이 WB에 자금을 넣어 신흥국 대상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가신용등급이 낮은 일부 신흥국 채권시장이 마비되면서 자금줄이 끊길 위기인데, IMF와 WB가 낮은 이자로 대출해 경제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머스 교수는 한국은 특정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도 원·달러 환율이 어느덧 1400원 중반대에 이를 정도로 상승(원화 평가절하)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는 관측이 많다.
신흥국뿐 아니다. 서머스 교수는 영국 국채 금리가 폭등(길트채 가격 폭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 연기금을 두고서는 “영국이 자초한 것도 있지만 세계 경제 시스템 안에서 일어난 미세한 떨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경제 상황이 다소 정상적이었다면 이번 영국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같은 복잡한 국면에서는 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도 언제든 경제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머스 교수는 “연준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두고 (긴축을 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재차 비판하면서 “그러나 연준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 긴축을 피하려 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파른 긴축을 통해 침체를 경험하는 게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낫다는 뜻이다.
미국 미시간대에 따르면 이번달 기대인플레이션(추후 1년) 중간값은 5.1%로 전월(4.7%)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연준이 가파르게 긴축에 나서고 있음에도 물가는 잡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