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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이슈)철강 카르텔 탄생(?)

김홍기 기자I 2001.12.17 12:48:07
[edaily]철강 카르텔(steel cartel)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련국과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효과적인’ 철강 카르텔 탄생은 철강 가격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동차, 항공, 건설 등 철강을 사용하는 모든 업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는 월요일(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와 관련된 회의가 열린다. 우선 철강 카르텔 논의는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됐다. 값싸고 질 좋은 외국 철강 수입으로 미국 철강업체들이 고전하자 미 정부가 이를 지원하고자 나선 것이다. 특히 미국의 달러화 강세로 외국산 철강제품과 경쟁할 수 없게 된 것도 미국 철강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97년 이래로 미국에서는 28개의 철강업체가 chapter 11을 신청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는 25개 업체가 신청했다. 어떻게 보면 “가만 있다가는 고사하고 말겠구나”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철강 카르텔 논의와는 별도로 얼마전에는 미국의 USX-US 스틸그룹이 베들레헴 스틸, 내셔널 스틸, 휠링-피츠버그 등을 인수, 외국 업체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철강업계의 인수-합병은 경제적으로 볼 때 의미가 없다. 이미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합병은 생산감축이 목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철강 카르텔을 통해 생산감축에 나서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시 대통령이 전 세계 주요 업체를 상대로 철강 카르텔을 구성하던 지 아니면 미국 시장에서 나가라고 말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미국의 국제통상위원회는 부시 행정부에 주요 철강 제품에 대해 5~40%의 관세를 부과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책이 시행될 경우에는 미국 수출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 브라질, 일본, 한국 등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유 시장’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왜 부시 대통령이 업계를 대신해서 보호무역주의를 밀어붙이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치키타라는 한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통상 마찰을 일으켰던 ‘바나나 전쟁’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보통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한 때 바나나가 주요 수출품인 중남미의 ‘바나나 공화국’들을 지배, 중남미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치키타는 현재 경영진의 실책과 EU의 쿼터로 인해 chapter 11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철강은 자동차 부품, 세탁기, 주택 등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주요한 산업의 기반이기 때문에 철강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9월11일 테러 직후 미국의 철강노동자들은 미국은 전쟁 중이라고 선언한 뒤 전쟁 수행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철강산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작년에 철강 생산량의 1% 미만만이 미국의 탱크와 전함을 만드는데 쓰였다. 전쟁 무기는 알루미늄이나 티타늄과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 철강과 무기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철강이 직접 탱크를 만드는데 쓰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트럭과 다리, 건물 등에 널리 쓰인다고 밝히고 있다. 또 철강 업체의 세금을 주요 기반으로 삼는 일부 주들도 철강업계 보호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60만 명의 퇴직 철강업계 종사자들이 살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 버지니아 등은 부시에게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 부시로서는 이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경우는 다음번 대통령 선거때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곳인데, 부시는 지난번 대선 기간동안 철강산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표명,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뒀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도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적했다. 생산을 줄이게 될 경우, 해고가 뒤 따르게 될 뿐만 아니라 설비 처분은 환경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통상위원장인 파스칼 라미는 “미국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짊어져야 할 짐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보복하겠다고 다짐해놓은 상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러면 어느나라가 이러한 부담을 지게될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는 (힘이 센) 유럽연합이나 일본, 미국이기 보다는 러시아, 브라질, 한국, 우크라이나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강대국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한국의 개고기에 대해서만 유난법석을 떠는 것과 같은 논리라는 설명이 된다. 만약 철강 카르텔이 구성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마도 1990년대에 생산감축에 합의했던 알루미늄 산업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 재무장관인 폴 오닐은 세계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의 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 알루미늄 카르텔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미국 업계와 학계에서는 오닐 장관의 경력을 놓고서 철강 카르텔은 결국 알루미늄 카르텔과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당시 알루미늄 카르텔 모습을 보면 미국, 유럽연합, 노르웨이, 호주, 러시아, 캐나다 등 주요 알루미늄 생산국들은 범위를 정해놓고 2년간 최대 200만 톤까지 감축키로 합의했었다. 사실상 100만 톤도 감축이 되지는 않았지만 가격은 파운드 당 20센트에서 56센트까지 솟구쳤다. 그 후 알루미늄 산업은 매우 수익성이 좋은 산업이 됐고, 자발적으로 줄이기까지 했다. 물론 알루미늄 가격 상승으로 항공업체나 맥주업체의 비용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작년에 전 세계의 철강업체는 8억 4700만 톤을 생산했다. 이는 전 세계 수요량의 40%가 넘는 규모다. 과잉생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이 이미 생산을 감축했기 때문에 더 이상 줄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는데 있다. 미국 업체들은 이미 생산능력을 20%나 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국 철강업체나 정부는 미국 철강산업에 대해 동정심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말했다. 미국 철강업체의 문제는 무능한 경영진과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자들의 행태에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철강업계는 이미 통합을 마쳤다. 유럽 철강 생산량의 3분의2를 6개 업체가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12개 업체가 3분의2를 생산한다. 통합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기도 했다. 더 이상 줄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유럽이 우려하는 것은 실상 다른 데 있다. 만약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누가 피해를 보느냐는 것이다. 미국에 철강을 팔 수 없게 된 외국 업체들이 유럽에 팔려고 나설 것 아니냐는 것이다. 1998년에 철강 순수출지역이었던 유럽연합은 올해에는 순수입지역으로 바뀌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은 철강생산량을 감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구속력은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얼마를 줄이겠다고 밝히지도 않고 있다. 우선 미국이 하는 것을 보고 하겠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철강 카르텔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카르텔에 가입한 국가나 업체들의 생산단가가 비슷할 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카르텔은 참가하지 않는 국가나 업체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근래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효과적으로 가격담합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 예를 들어 배럴당 생산단가를 보면 사우디 아라비아가 러시아에 비해 3분의1 이상이 싸다. 따라서 러시아는 사우디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난달에 러시아가 추가 감산하겠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카르텔이 성공하려면 상품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낮아야만 한다. 가격이 높아도 별 수 없이 구입해야만 성공한다는 것. 대체상품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 철강은 일단 카르텔이 구성될 수 있는 조건은 갖췄다. 생산단가가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보복 능력을 갖고 있으며, 가격 탄력성도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철강 카르텔에 대한 수요다. 미국만이 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서구에 대항하기 위해 석유를 무기로 써야한다’거나 석유가 주요 수입원인 OPEC의 사정과는 다르다. 따라서 이번 카르텔 성공여부는 결국 미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철강 생산국들이 미국이 뭔가를 보여줘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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