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와 기아 K9은 국산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이다. 가장 비싸고 덩치가 큰 대형 세그먼트에 속한다. 소위 ‘사장님 차’라고 불리는 플래그십 국산차 시장은 국내에선 제네시스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지난해 기아차가 2세대 K9을 출시하며 판세를 바꾸고 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지난해 4월 출시된 신형 K9은 1세대 참패의 기억을 잊고 완벽한 새출발을 시작했다. 대형 세단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작년 4월 K9은 1222대를 팔며 1세대 모델이 월평균 100대도 팔리지 않았던 악몽을 깨끗이 씻어냈다. 이후에도 월 1000대 이상씩 꾸준히 팔며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1만1630대(월평균1292대)를 팔았다. 같은 기간 제네시스 EQ900는 6935대(월평균 771대)를 파는데 그쳤다.
제네시스는 K9의 선전에 독이 올랐는지 대기업 인사이동이 시작되는 지난해 12월 모델명부터 외관 디자인까지 바꾼 G90 페이스리프트를 출시했다. 출시 첫 달 2139대를 팔며 과거 에쿠스부터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은 언제나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올해 1월 1387대, 2월 960대로 신차 효과조차 누리지 못하고 속절없이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 물론 명절과 2월이 껴 있어 영업일 수가 줄어든 것도 판매량이 감소한 원인 중 하나다. K9의 판매량도 1월 1047대, 2월 906대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산 세단의 강자 제네시스 G90가 출시됐음에도 K9 판매량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사실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부활이다. 더구나 현대차 판매점은 기아차에 비해 30% 정도 더 많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순항의 또 다른 이유다. K9은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가성비가 좋은 모델로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K9의 시작가는 5389만원으로 제네시스 G90보다 한급 낮은 G80(4899만~7098만원)과 가격대가 겹친다. 제네시스 G90는 7706만원부터 시작한다. K9이 2300만원 가량 저렴하다. 그럼에도 파워트레인이나 공간, 편의안전장비는 G90와 큰 차이가 없다. G90가 쇼퍼드리븐 성향이 강하다면 K9은 오너드리븐의 성향이다. 이런 이유로 자가 운전용 고급 세단을 찾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존재감이 없던 K9은 2세대 모델을 출시하며 G90의 판매량을 위협할 만큼 급성장했다. K9이 지금의 기세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이미지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계속해서 제기되는 저렴한 대중차 이미지의 'KIA' 로고의 변화가 가장 시급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스팅어, 모하비는 기아차지만 독자 로고를 사용했다.
한동안 제네시스 G90와 기아 K9의 엎치락뒤치락 집안 싸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네시스 G90와 기아 K9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선 해외 시장에서 판매량이 올라야 한다. K9과 G90 모두 고민이 짙어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