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할 때 피도 나와 ''잔뜩'' 겁 먹었더니…

조선일보 기자I 2009.11.12 10:44:18

꼭 폐렴인 듯싶은데… "기생충약 드세요"

[조선일보 제공] 40대 가정주부 김모씨는 올봄 몸에서 미열이 나고 기침 증세를 앓았다. 괜찮겠지 싶었으나 열이 일주일이 가도 떨어지지 않자 동네 병원을 찾았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오른쪽 폐에 폐렴이 보였다. 항생제를 먹고 증상이 좋아졌다. 김씨는 감기 한번 세게 걸렸다고 여기고 지나갔다.

그러다 3개월 후, 비슷한 증상이 또 생겼다. 기침할 때 점점이 피도 섞여 나왔다. 이번에는 왼쪽 폐에 폐렴이 생겼다고 했다. 의사는 결핵 같다고 했다. 가래를 뽑아서 결핵 검사를 냈다. 결과는 '꽝'이었다. 의사와 환자, 모두 고민했다. 모양새나 증상이나 딱 결핵인데, 균은 안 나오니 말이다. 이런 경우 일단 결핵약을 먹고 경과를 보는 것도 한 치료 방법이다. 그도 결핵약 복용을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증세가 좋아졌다. 역시 결핵이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차도가 없었다. 되려 반대쪽 폐에도 염증이 생겼다. 폐렴이 동시다발로 출몰하다니…,겁이 났다.

김씨는 정밀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각종 검사 끝에 최종 진단이 나왔다. 이 사단을 일으킨 범인은 놀랍게도 기생충이었다. 폐흡충증이다. 어감(語感) 자체가 몸을 움찔하게 만든다. 다른 말로는 '폐디스토마', 토종 말로는 '허파 토질'이다. 민물 게나 가재에 사는 기생충이다. 민물 게를 날로 먹으면 그 안에 있던 기생충도 소화기로 들어온다. 이후 위장 벽을 뚫고 나가 복강으로 진출한다. 그 다음에는 횡경막을 파고 지나가 폐에서 자리를 잡는다. 산소를 좋아하는 놈이다. 거기서 살림 차리고 새끼도 낳는다. 그 자식들이 딴 집 가서 또 터를 잡는 식이니, 폐렴이 이곳저곳에서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엑스레이 모양새가 결핵과 유사해 종종 결핵으로 오인된다.

의료진은 김씨의 식습관을 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지가 남도 지역 출신으로 강에서 나오는 민물 게를 좋아했다. 이를 구해다 게장을 자주 담가 먹은 덕에 며느리도 민물 게장 애호가가 됐다. 그 과정에서 폐흡충증에 감염된 것이다. 김씨는 결국 '기생충약'(프라지콴텔)을 먹고 나았다. 환자의 90% 이상이 기생충 약 한번 복용으로 낫는다.

많은 사람들이 민물 게를 짠 간장에 절이면 기생충도 이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끓여야 죽는다. 어떤 이는 민물 생선 회를 먹으며, 매운 고추장에 푹 찍어서 독한 소주와 함께 어금니로 꼭꼭 씹어 먹으면 기생충인들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제법 그럴듯한 이론도 제시한다. 하지만 그 놈의 기생력은 의외로 세다. 달리 기생충이 아니다. 그렇게 먹다가 되려 사람이 다친다.

그래도 기생충은 양반이다. 집 주인이 죽으면 기생할 곳이 없어져 자기도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놈이기 때문에 대부분 집 주인이 죽을 정도로 해를 끼치진 않는다. 기생의 자세가 됐다. 기생을 하려거든 이 정도 매너는 지켜야 한다. 아무튼 평소에 민물 게장 즐기시는 분들, 가끔 기생충 검사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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