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최경주② "운동선수가 멋을 부리면 끝난 인생"

이의철 기자I 2008.11.25 13:11:11

"골프는 내 인생..기다릴 줄 알아야 우승도 해"
"가족은 나의 힘..지인들의 믿음이야말로 원동력"
"골프선수 안됐으면 카센터 사장 하고 있을 것"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PGA 7승 올렸다. 골프를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완도 출신인데, 최 선수는 어떤 정기를 타고 났다고 생각하나.
“정기는 무슨....사실 시골 출신이란 게 내 복이다. 내가 완도라는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얻은 게 많다. 내가 만약 서울서 태어났다면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완도에선 암벽을 타는 일이 많았는데, 암벽을 타다보면 벽이 나온다. 그러면 그걸 한걸음씩 올라가야 한다. 절대 한꺼번에 올라갈 수 없다. 그게 바로 ‘계단의 철학’이다. 또 ‘빈잔의 철학’은 내 마음의 잔을 비워야 다른 것을 넣을 수 있다. ‘빈잔’은 낮춤이고 겸손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비닐하우스를 좀 열어놓으라고 하셔서 비닐을 걷었는데, 그날 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이종하려고 키워놓은 고추 묘종들이 다 죽어버렸다. 온실 속에 있다 보니까 약해진 거다. 그러면서 ‘잡초의 철학’을 깨달았다. 잡초의 생명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배운 거다”
 
-최선수를 보면 유명해지기 전이나, 유명해졌을 때나, 팬에게나, 기자에게나 한결같다.(기자는 2004년 US오픈이 열린 뉴욕주 시네콕 힐스에서 최경주 선수를 만난 경험을 얘기했다, 편집자주)
“내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겸손'이라는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운동선수가 멋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난 인생이라는 게 지인들의 말이고 나의 생각이다. 사실 운동선수는 겸손하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계단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계단은 올라갈 때도 한 계단씩, 내려갈 때도 한 계단씩이다. 그게 겸손이다. 올라가는 것도 천천히, 내려오는 것도 천천히 해야 한다”

-본인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노력형이다. 92년인가 프로테스트 통과하고 나서 적성검사 비슷한 것을 받은 적 있다. 일종의 인성검사였는데, 대기만성형이라고 나오더라. 그래서 난 노력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노력했는가.
“남들이 4시간 연습하면 나는 8시간 했다. 남들이 세시간 자면, 나는 자지 않았다. 남들이 해질 무렵 집으로 가면, 난 해가 지고 나서 갔다. 항상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연습했다. 이런 말이 있다. 늦게 시작했지만 더 일찍 꽃필 수 있다. 남들이 하루에 두 세시간씩 연습해서 10년만에 이루었다면, 나는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해서 5년만에 이루겠다는 생각했다”

-최경주에게 골프는 무엇인가.
“참 어려운 질문인데. 골프는 내 인생이다. 인생에는 많은 역경이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참아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트로피를 가지러 가서는 트로피를 차지할 수 없다. 트로피가 제 발로 찾아와야 한다. 그러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기다림이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풍요로움이 중요하다”

-골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는 중학교때부터 역도를 했다. 그런데 완도에 갑자기 골프 연습장이 생겼다. 연습장 사장님이 지역사회 학생들을 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에 추천서를 보내 연습생을 뽑았는데, 그러면서 골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다. 골프를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난데 없이 골프를 하게 된 거다”

-골프에 대한 첫 느낌은 어땠나.
“25년 전에 내가 첫 1타를 친 그 감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손 맛이랄까. 그 불씨가 아직도 있다.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고기로 표현하면 굉장히 부드러운 생고기다. 왜 그냥 소금장에 찍어 먹을 수 있는 생고기 있지 않는가”

-내년이면 PGA투어에 참가한 지 10년이다. 미국생활은 어떤가.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적응력이나 흡수력이 대단히 좋은 편이다. 물론 고생도 많았다. 알게 모르게 텃새도 있고. 2000년인가 이런 적이 있었다. 8시가 티업시간인데 3초가 늦었다고, 티박스에 3초 늦게 도착했다고 나가기도 전에 2벌타를 주더라. 그 상황에서 일단 꾹 참고 쳤다.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누르고 하면서 4언더로 잘 쳤다. 경기 끝나고 나서 ‘내시계로 8시가 안됐는데 도대체 3분도 아니고 3초 늦었다고 2벌타 줄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내가 만약 미국 선수였다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얄밉더라. 그런 게 텃새다“

-PGA 투어 참여하는 선수들중에 가장 친한 선수는.
“특별하게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없지만 여러 선수들이랑 격의 없이 지낸다. 타이거 우즈를 포함해서 짐 퓨릭, 어니 엘스, 프레디 펑크, 아담 스캇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드네. 내가 이름을 거론 안했다고 섭섭해 할 사람들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타이거 우즈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지(웃음)”

-타이거 우즈는 어떤 선수인가.
“굉장히 젠틀한 선수다. 그리고 집중력이 뛰어나다. 나도 집중력이 좋은 편인데 나보다 훨씬 집중력이 좋다.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대단히 배울 게 많다. 키도 있고, 힘도 있고, 탄력도 좋고 한마디로 골프를 위해 타고난 선수다”

-최선수가 타이거 우즈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표정은 내가 좀 낫지 않나?(웃음). 나도 눈매가 한 눈매 하는데, 타이거도 그렇다. 둘이 같이 티박스에 들어가면 분위기 장난 아니다. 타이거도 내 눈을 보면 긴장을 많이 한다.(웃음) 타이거는 본인이 대회를 주관하거나, 우승이 확정되거나 하면 말을 걸지,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건다”

-최선수를 끊임없이 도전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은 무언가.
“팬들의 힘이고. 지인들의 믿음이다. 믿음엔 세가지가 있는데, 하느님의 특별한 믿음이 첫째요,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둘째라면, 마지막은 지인들이 내게 주는 믿음이다. 실제로 골프 게임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괜찮아 후반에 잘될거야’ 그렇게 격려해주면 진짜로 후반에 다 만회한다. 어찌 지인들 뿐이겠는가. 한국 국민들,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다 믿음을 주시면 그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런 것들이 나를 끝없이 도전하게끔 만드는 엔진이다”
 
-골프선수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이루고 싶은 꿈은 많다. 명예의 전당도 가고 싶고, 메이저도 탈환하고 싶고. 메이저 우승이 왜 중요하냐면, 메이저를 통해서 실제로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뀔 수 있고, 한국인들의 골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인간 최경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나중에 죽고 나서 '최경주는 열심히 살다 갔다. 골프를 통해 많은 일을 한,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모범적인 가정으로 미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최선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가족은 평화이자 곧 나의 성적이다. 가족들이 아빠를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 가족은 서로가 인정해주는 공동체다”

-좋은 아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 투어에 참가하면 집을 비우니까, 아빠의 빈자리를 엄마가 채워주게 된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이랑 같이 지낼 땐 아내의 손길이 안 가게끔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요리도 하고, 집안 일을 내가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가 고생했으니까, 좀 쉬라는 의미도 있다. 아내가 엄청난 내조를 해주고 있고, 100% 만족한다. 장가 잘 갔다(웃음)”

-골프선수가 안됐다면 최경주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글세. 기계를 고치는 기술자? 아마 카센터 사장이 됐을 거다.(웃음). 원래 무얼 만들고 고치고 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그 당시 완도에서 카센터 사장이 됐으면 굉장히 성공한거다”(최경주는 완도 수산고 기관과를 나왔다,편집자주)

최경주는 지난 일요일 미국으로 출국, 이달 29일부터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서 열리는 LG스킨스 게임에 참석한다. 한국 선수가 PGA투어 스킨스 게임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초청게임에 참석하고 올 시즌을 마무리한다. 내년 시즌에서 최경주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항상 전진하는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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