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40년)③내수 `카리스마` 계속된다

정재웅 기자I 2007.12.21 11:17:55

수입차 내수점유율 5% 넘어서..수입차 공세강화
日 車업계 "내수시장 포화상태..한국시장으로 진출"
현대차, 고급차와 다양한 모델로 진검승부 준비

[이데일리 정재웅기자] 1985년 1월 메이커별 생산차종 제한조치가 전격 해제됐다. 그동안은 1981년 ‘2·28 조치’로 현대차와 대우차(당시 새한)는 승용차를, 기아차는 소형상용차만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1985년부터는 업체들이 생산차종에 제한없이 모든 차종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결정은 1987년 수입차 개방을 앞두고, 국산차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이루어졌다. 차종별 독과점 구조를 무너뜨려 경쟁을 가속화함으로써, 국산차 전반의 경쟁력을 도모하겠다는 정책의지가 반영됐다. 이는 한국의 자동차업계가 ‘무한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현대차는 내수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1985년 국내 첫 전륜구동 승용차인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CXL, 쏘나타 등 신모델을 쏟아냈다. 이에 대응해 대우자동차가 미국 GM과 합작 개발한 ‘르망’을 출시했고, 기아자동차는 일본 마쯔다 기술로 제작한 ‘프라이드’를 내놓았다.

1987년 국내 자동차시장에선 현대차의 7개 차종 23개 모델, 대우차의 8개차종 20개 모델,기아차의 1개 차종 6개 모델 등 총 16개 차종 49개 모델이 대격전을 펼쳤다. 이 같은 메이커간 경쟁은 자동차의 품질개선과 더불어 수요도 촉발해 1986년 14만여대이던 승용차판매는 1987년 24만여대로 급증했다.

현대차(005380)는 1987년 ‘우리 모두가 승리자(We are all the winner)’라는 ‘AW87작전’을 전사적으로 전개해 27% 이상 늘어난 13만8108대의 승용차를 판매했다. 승용차시장이 무한경쟁 시대로 전환됐지만 현대차의 승용차시장 점유율은 56.3%에 달했고, 그 지배력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 수입차의 무서운 공세..2012년엔 점유율 10% 넘는다

1987년 외국산 자동차 수입개방을 앞두고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차종 제한조치 해제로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하지만 막상 1987년 수입차 개방 원년에 한국에서 판매된 외국산 자동차는 10대에 불과했다. 국산차들로선 사실상 외국산 자동차에 신경을 쓸 필요도,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 올들어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수입차 모델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혼다 CR-V. 최근 수입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인하에 돌입하면서 국내 내수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IMF 직후인 1998년 2000대 수준이던 수입차 판매는 2002년 1만대선을 돌파한데 이어 올해는 5만대도 넘어설 전망이다. 시장점유율도 1987년 0.004%로 극히 미미했지만 올해는 5%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일 수입차의 국내진출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송승철 회장은 “20년전 10대로 시작한 수입차판매가 올해 5만대를 돌파한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내년에는 6만대 이상 팔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차는 물론이고 국산차 메이커들에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한·EU FTA까지 체결되고, 지금은 잠시 유보된 일본과의 FTA마저 체결된다면 국내 자동차 업계, 특히 현대차가 입을 손실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호 세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일 FTA가 체결되고 자동차 시장 개방이 더욱 가속화될 경우 오는 2012년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최소 10%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일본시장 포화, 일본 車업계 한국으로 눈돌려..‘新임진왜란’

“일본 내수시장이 현재 포화 상태여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젠 한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일본 도쿄에서 만난 김경진 현대차 일본법인 구매총괄본부 팀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닛산의 경우만 해도 지난 두달간 판매량이 급감했다”면서 “포화상태인 내수시장 타개책의 일환으로 해외로 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 중 한국이 꼽힌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일본자동차판매협회연합회(JADA)에 따르면 일본차 메이커의 일본 내수시장 판매량은 부가가치가 낮은 경차를 제외할 경우 98년 433만5318대였던 것이 지난 해 371만5887대로 급감했다. 일본 메이커들이 고부가 차량의 내수가 급격히 줄자 그 해결책으로 한국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최근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지난 80년대부터 늘려왔던 해외공장 생산량을 줄이고 다시 일본으로 유턴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 등 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일본차 업체들의 한국진출 계획도 점차 구체화 되고 있다.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만 판매하고 있는 닛산은 이미 내년 가을쯤 대중 브랜드인 ‘닛산 브랜드’ 차량들을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시키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도요타도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에 이어 범용차 브랜드인 ‘도요타 브랜드’ 모델의 한국 진출을 적극 검토중이고 미쓰비시도 대우자동차판매를 통해 내년중 한국에 진출하는 등 일본 메이커들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 ‘이에는 이, 눈에는 눈’..현대차, 내수시장 카리스마 지킨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20년전 국내 경쟁자들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AW87작전’을 펼쳤다면, 지금은 수입차에 경쟁할 수 있는 고급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렉서스 ‘RX 350’에 대응하기 위해 럭셔리 SUV 베라크루즈를 출시한데 이어, 내년 1월 8일에는 벤츠의 E350, BMW의 530i, 렉서스 GS350 등과 경쟁할 고급 승용차인 ‘제네시스’를 출시한다.
                                                                                                                   
또 내년 하반기에는 에쿠스 후속 VI(프로젝트명)와 ‘제네시스 쿠페’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로 주목받은 정통 스포츠 쿠페 BK(프로젝트명)도 잇따라 출시된다.

이봉환 현대·기아차 차량개발 2센터장(전무)은 “제네시스 개발에 4년간 5000억원을 투자했다”면서 “‘제네시스’를 시작으로 국내외 시장에 프리미엄 세단을 출시해 세계적인 명차와 당당히 겨룰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 현대차의 카리스마를 지켜줄 `제네시스`의 모습.
안수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지난 10년간 경쟁업체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내수점유율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현대차의 상품성이 그 만큼 높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제네시스는 내수시장에서 수입차와 경쟁할 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차를 필두로 수입차들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20년전 국산 메이커들과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면, 지금은 수입차와 생존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인 현대차가 내수시장에서 ‘카리스마’를 유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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