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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발굴 하세월에 동네 슬럼화…`철창 마을`된 풍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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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지 기자I 2026.10.06 0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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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인근서 1997년 백제 유물 발견 후 정비사업 멈춰
'주민·문화유산 공존' 3권역, 발굴 하세월에 건축 규제
주민 떠나고 곳곳엔 펜스…상권 떠나며 생활환경 악화
풍납동 4·5권역 정비사업 '속도'…권역별 개발 격차 커져
전문가 "토성 주변 녹지화해 보존·역세권 고밀 개발 방법도"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거래가 아예 없어요. 이 동네에 누가 새로 들어오고 집을 사겠어요?”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 A씨는 사무실 앞 빈터를 바라보며 이 같이 말했다. 20년째 이 곳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A씨의 말처럼 풍납동 곳곳에서는 주민과 상인들이 빠져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풍납토성 인근 풍납동이 ‘철창 마을’로 변하고 있다. 1997년 백제 시대 유물이 발견되며 보존을 위한 보상·이주에 발굴 작업도 기약이 없는 탓이다. 정비사업은 30년 가까이 제한된 데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는 빈 터와 펜스로 채워졌고 음식점 등 각종 생활시설도 떠나며 남은 주민들의 주거 환경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건물 앞에 설치된 철창 위에 '2m 규제 즉각 철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재 풍납동 3권역은 지하 굴착 깊이를 2m 이내로 제한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건물 앞에 설치된 철창 위에 '2m 규제 즉각 철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재 풍납동 3권역은 지하 굴착 깊이를 2m 이내로 제한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주민 떠나고 빈터·펜스만 늘어나…30년째 멈춘 개발

이날 찾은 풍납동에서는 한 블록 건너 한 블록 꼴로 건물에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펜스로 둘러싸인 건물과 콘크리트가 깔린 빈 공간이 이어졌다. 일부 부지에는 소규모 주차장과 공원이 마련돼 있었고 ‘문화유산 발굴 전까지 임시 시설’이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빈터로 관리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소공원에는 ‘야간 시간대 쉼터 이용 자제’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곳에서 만난 70대 조모씨는 “공간이 많으니까 쓰레기랑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편의점 빼고 식당이나 가게가 전부 나가버려서 동네가 예전같지 않다”고 했다.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임시 조성 쉼터에 '야간시간대 쉼터 이용 자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임시 조성 쉼터에 '야간시간대 쉼터 이용 자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풍납동 공동화는 백제시대 유물 보존을 위한 철거와 발굴이 장기간 이어지며 나타났다. 앞서 1997년 풍납동 아파트 재건축 공사현장에서 백제토기 등 다수 유물이 발견됐다. 정비사업은 중단됐고 정부는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보상을 마친 건물엔 철거를 기다리며 하나둘 펜스가 세워졌다.

풍납동은 보존 방식에 따라 1~5권역으로 나뉜다. 이 중 3권역은 2015년 주민과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전환됐다. 신규 보상 신청도 중단됐다. 이주를 원치 않는 주민들은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지만 제약이 잇따랐다. 낡은 저층 주거지지만 지하 굴착은 2m까지, 지상은 7층까지만 지을 수 있어 대규모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

보상과 발굴은 갈길이 멀다. 서울시에 따르면 가구 기준으로 보상률이 8월 기준 57%에 그쳤다. 시는 2015년 이전에 보상을 신청한 주민에 대해서는 2032년쯤까지 보상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보상이 완료한 뒤에도 발굴조사가 최소 5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송파구청은 발굴과 복원을 마칠 때까지 부지를 방치할 수는 없는 만큼 주차장이나 공원 등 임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이 빠져나간 자리를 생활시설과 상권이 채우지 못하면서 빈터와 임시시설만 늘어나고 있다. 조씨는 “풍납동은 사람이 다 빠져나가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다니기 무섭다”고 했다.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골목에 주민 보상을 마치고 건물이 철거된 빈 터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골목에 주민 보상을 마치고 건물이 철거된 빈 터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보상도 발굴도 하세월…주민 “생활시설 다 떠나 동네 슬럼화”

반면 풍납동 4·5권역에서는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며 권역별 개발 격차도 나타나고 있다. 4권역인 풍납미성아파는 재건축이, 5권역에서는 모아타운이 진행된다.

주민들은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약 없는 보상과 발굴, 건축 규제로 인한 주거환경 제약은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3권역 주민 최모(67)씨는 “언제 사업이 다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 일대가 한강 앞 노른자 땅인 만큼 장기간 개발이 묶여 재산권 침해도 심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풍납토성 인근 개발 방향을 담은 현행 종합계획은 2027년까지 적용된다. 국가유산청은 2028년부터 새 5개년 계획을 적용한다. 서울시의회는 새 계획에 주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조례를 마련했다.

전문가는 문화유산 보존과 주민 거주가 충돌하는 현재의 구조를 유지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신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풍납동의 용적률을 역세권으로 이양하는 방안이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발굴이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20년, 30년 뒤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풍납토성 주변은 녹지 등 보존 공간으로 조성하고 기존 주민들은 인근 강동구청 역세권에 고밀 개발한 주거지로 이전하는 방식도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소공원에 '보상완료 부지를 지하 백제 문화층 보존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임시 조성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소공원에 '보상완료 부지를 지하 백제 문화층 보존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임시 조성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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