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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로봇, 의료냐 복지냐 정하는데만 넉달...제구실 못하는 '혁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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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 기자I 2026.09.01 0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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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혁신 못따라가는 규제샌드박스]②
ICT 규제샌드박스 신청 2년 새 110건→67건
유사·동일 과제 반복 승인…“신규 규제 완화 뒷전”
법정 처리 30일 무색…부처 이견에 1년 이상 대기
6개 부처·8개 영역 칸막이…정부, 원스톱센터 추진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혁신적인 신기술과 서비스가 기존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시장에서 검증받도록 2019년 도입된 규제샌드박스가 오히려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의료·모빌리티·금융 등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 서비스가 빠르게 등장하고 있지만 규제는 여전히 부처와 법률별로 나뉘어 있어서다. 어렵게 샌드박스에 들어가도 관계부처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실증을 마친 뒤에도 법령 정비가 늦어져 ‘임시 자격’으로 사업을 이어가는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AI 규제혁신 수요는 3배…기업 신청은 감소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ICT 규제샌드박스 전체 신청 건수는 2024년 110건에서 지난해 67건으로 줄었다. 올해는 7월까지 33건으로 전년 동기 47건보다 약 30% 감소했다.

실증특례 신규 신청도 올해 7월까지 19건으로 전년 동기 32건보다 40% 이상 줄었다. 규제샌드박스 지정 건수 역시 임시허가와 실증특례를 합쳐 2024년 51건에서 지난해 45건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7월까지 8건에 그쳤다.

반면 AI 관련 규제혁신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7월 기준 신규 과제는 12건으로 전년 동월 4건보다 3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11건이 AI 관련 과제였다.

AI 시대를 맞아 규제를 풀어달라는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샌드박스를 신청하는 기업과 특례를 받는 기업은 줄어드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자율주행·돌봄로봇…융합 기술일수록 ‘부처 핑퐁’

규제샌드박스 현황(사진=챗GPT)
규제샌드박스 현황(사진=챗GPT)
AI 규제의 대표적인 걸림돌은 데이터다.

자율주행차나 배달로봇의 AI 성능을 높이려면 실제 도로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학습해야 하지만, 영상에는 보행자 얼굴과 차량 번호판 등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우아한형제들 등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특례를 받은 뒤에야 원본 영상을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AI 개발 과정에서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하는 내용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에 나섰지만, 규제 완화가 법제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안정상 중앙대 겸임교수(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는 “AI 시대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 부분에도 통로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AI 돌봄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A사는 올해 5월 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신청한 뒤 4개월째 사전 컨설팅을 받고 있다. AI 돌봄로봇이 의료기기인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복지 용도인지 판단하는 것부터 쉽지 않아 AI 안전성, 개인정보 보호, 기존 규격 등을 놓고 관계부처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

규제샌드박스가 여러 산업의 융합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제도는 여전히 산업별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ICT 규제샌드박스는 6개 부처, 8개 영역으로 파편화돼 있다.

‘30일 처리’라지만…실제론 1년 이상

현행 정보통신융합법상 ICT 규제샌드박스는 신속처리, 임시허가, 실증특례 등으로 나뉘며 신청 접수 후 30일 이내 결과를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체감하는 대기기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정식 접수에 앞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등의 사전 컨설팅을 거치면서 서류를 보완하거나 규제 쟁점을 관계부처와 협의하는 과정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T(030200)가 올해 5월 승인받은 무선망 활용 ‘LTE 시내전화’ 서비스도 관계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데 1년여가 걸렸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정 처리기간 30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특히 실증특례는 특례 기간 내 법령 정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문제가 더 크다. 어렵게 실증특례를 받아 사업을 시작해도 관련 법령이 그대로라면 특례가 끝난 뒤 다시 규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퍼스트 펭귄’보다 반복 승인

샌드박스가 새로운 규제를 푸는 통로보다 이미 특례를 받은 사업을 반복 승인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정 사례를 보면 ‘도심형 스마트 보관 편의 서비스’, ‘도시정비 총회 전자적 서비스’ 등 선례가 마련된 유사·동일 과제가 반복해서 지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신산업의 규제를 처음 푸는 ‘퍼스트 펭귄’보다 이미 길이 열린 사업자가 같은 특례를 다시 받는 데 제도가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된 사업 모델이 여전히 샌드박스에 머무는 사례도 있다. 공유숙박은 이미 오래된 사업 형태지만 관련 법제화가 지연되면서 실증특례를 통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은 2021년 금융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지만 정식 제도화가 지연되면서 특례를 연장해 사업을 이어가야 했다.

규제샌드박스가 당초 목표였던 ‘규제 개선’보다 ‘규제 유예’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제도 손질…“창구보다 조정 권한 중요”

정부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 개편에 나섰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신산업 분야 규제혁신 간담회에서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개선하고 법령 정비를 의무화하는 한편, 국무총리실 산하에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는 “6개 부처, 8개 샌드박스로 나뉜 현행 구조 때문에 기업들이 어디로 신청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고 호소한다”며 “원스톱지원센터를 통해 일괄 안내와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신청 창구를 하나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규제 개선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원우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장은 “접수만 형식적으로 일원화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심사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생겼을 때 누가 조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규제샌드박스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규제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허용된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전체 시스템이 네거티브 방식으로 가야 해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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