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북한이 남북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 연기를 통보하며 남북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가 남북관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주도하겠다는 계산과 함께 금강산관광·북미대화·6자회담 등 정치현안과 연계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로선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이산가족상봉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인도적 차원의 행사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북측에 신중한 태도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北, 주도권 잡기 전략…정치현안과의 연계 시도”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정부가 최근 남북관계 개선의 성과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및 ‘원칙있는 대북정책’의 결과라고 자평한 것에 반발하면서 주도권을 다시 쥐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설명이다. 고 교수는 “개성공단 정상화 과정에서 북측이 우리가 주장하는 ‘발전적 정상화’를 수용하는 등 굴복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며 “북측이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통일연구센터장은 북측이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연계하려는 의도를 다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과 관련, 북측은 이산가족상봉 이전에 실시할 것을 요구했고 우리측은 상봉이 끝난 이후인 내달 2일에 열 것을 주장해 왔다. 홍 센터장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관련해 우리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남북관계의 속도조절 차원에서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금강산관광 재개는 물론, 북미대화·6자회담 등 정치현안 전반과 연계해 풀어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4개 현안이 모두 집단적으로 관련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적극적 모습 보여야”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재개하고 틀어진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정부는 일단 남북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정치현안 전반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양무진 교수는 “북측이 이산가족상봉 연기를 철회할 필요가 있고, 우리정부도 북측에 명분을 줘야 한다”며 “남북 간 차관급·장관급 회담 등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양측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순직 센터장은 “우리와 북의 대응에 따라 남북관계 정상화 시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속도조절 차원이 될지, 경색이 장기화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금강산관광 문제와 관련해 우리정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북측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고유환 교수는 “시간이 길어지면 북의 페이스에 우리가 말릴 수 있다”며 “결국 우리정부의 태도와 입장에 달려 있다. ‘키’는 우리에게 있다. (경색 국면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북측 태도 변화 기다릴 것”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이산가족상봉은 인도적 차원의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북측의 태도변화를 기다리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아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무산되더라도 대북관계에서 기존의 원칙론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개성공단 정상화 등으로 대화국면에 접어든 남북관계가 이산가종상봉 무산이라는 돌출변수로 일시적 냉각기를 맞을 수 있지만 대북원칙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원하는 게 뻔하지만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다”며 “대북문제는 확고한 원칙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