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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화려한 옷을 입고 사교모임을 즐기는 훤칠한 일곱 남자가 있다. 출신 성분은 영국 귀족. 춤과 노래 실력이 출중하다. 게다가 입담까지 갖췄다.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18세기판 ‘F(Flower)7’이다.
국내서 초연 무대를 올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은 피로 물든 프랑스 혁명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일곱 명 비밀결사대 이야기가 줄기다. 때문에 일곱 남자배우의 연기조화가 작품의 중요한 축이다. 퍼시 역을 맡은 박건형·박광현·한지상을 주축으로 퍼시의 동지 벤을 연기하는 강정구, 파레이 역의 이준호 등이 조화를 이뤄 작품의 매력을 잘 지켰다.
작품에는 저마다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쉰다. 무엇보다 퍼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퍼시는 낮에는 유머 넘치는 한량 귀족으로 살다가 밤이 되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스칼렛 핌퍼넬으로 사는 이중적인 인물. 한량인 퍼시가 등장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엉뚱하면서도 귀엽다. 재치 넘치는 대사도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하녀들을 향해 “뭐야? 이 초록색 옷들은? 아니 정확히 풀색. 마치 식물원에 온 기분이야. 화분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식이다. 뮤지컬인데도 톡톡 튀는 대사 덕에 캐릭터가 입체화됐다. ‘블링블링’ 등 원작에 없는 단어를 넣고 한국적인 유머코드를 살린 덕이다.
배우들의 공이 크다. 묵직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은 퍼시를 ‘깨방정 연기’로 살려냈다.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무뚝뚝한 도예가로 나오는 박건형은 퍼시로 무대에 오르면 조권 못지않은 ‘깝형’이 된다. 특히 프랑스 공포정권의 권력자인 쇼블랑의 야망 넘치는 모습과 대비돼 극의 흥미를 돋운다. 쇼블랑 역을 맡은 양준모는 악역의 날을 잘 세웠다. 바다는 퍼시와 쇼블랑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마그리트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한 가창력과 연기로 풀어냈다.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영국 소설가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1865~1947)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낸 나이트가 대본과 가사를 써 뮤지컬로 만들었다. 영웅 모험물답게 음악은 박진감이 넘친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를 썼다. 이를 증명하듯 넘버 ‘인투 더 파이어’ ‘마담 길로틴’ ‘팔콘 인 더 다이브’ 등은 리듬이 강해 역동적이다. 미국 해병대 홍보 노래로도 쓰인 ‘인투 더 파이어’가 백미다. 트럼펫 등 금관악기와 현악기가 어우러진 18인조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연주 덕에 무대 위 연기가 돋을새김된다. 이지원 음악감독의 의도대로 음악의 질감이 잘 표현됐다. 마그리트가 부른 ‘아이 윌 포겟 유’ ‘웬 아이 룩 앳 유’ 같은 발라드 넘버도 무난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단순한 이야기에 비해 공연시간(150분)이 길다. 일부 장면을 들어내 공연의 압축미를 살리는 게 숙제다.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을 맡았다. 9월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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