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지난 1998년 발행된 외평채 30억달러가 오는 15일 만기를 맞아 상환되면서 외환시장의 새로운 수급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외평채 상환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인데다 국내 거액자산가들이 상당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환전에 나설 경우 달러 공급이 일시에 넘쳐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외평채 상환자금이 비슷한 조건의 해외 채권 투자로 다시 나갈 가능성이 큰데다, 대부분 환헤지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당장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외환보유액으로 묶여 있었던 달러가 국내 민간으로 풀리는 것인 만큼 일정 부분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외환당국도 외평채 상환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급동향을 체크하고 있다.
◇3분의 2가 거액 자산가 손에
15일 만기되는 30억달러 외평채는 마지막 반기 이자까지 더해 달러로 지급된다.
외환위기 당시 발행한 외평채를 상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30억달러 가운데 20억달러만 상환키로 하고, 10억달러는 차환발행키로 했지만 국제금융시장이 악화되면서 일단 전액 상환에 나섰다. (관련기사☞정부, 만기 외평채 30억달러 일단 다 갚기로)
기획재정부는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한국은행에 이미 지급지시를 내렸고, 15일 대행은행인 뉴욕뱅크 싱가포르 지점을 통해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달러로 지급된다.
업계에서는 당시 발행된 30억달러 가운데 20억달러 이상이 국내 거액 자산가에게 팔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도 이같은 계산에 동의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무기명 채권이기 때문에 현재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국내 금융사들이 유통시장에서 사들여 개인 투자자들에게 재판매한 만큼 업계 추정치가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보다 해외로..`브라질 채권 인기`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경우는 외평채 상환자금을 다른 외평채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한국물에 대한 익스포져를 정해놓고 투자하므로 이번에 상환받은 달러를 올해 차환발행때 외평채에 다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거액 자산가들이 대부분을 쥐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들은 외평채를 안전성과 수익성을 추구할 수 있고 절세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상환받은 달러를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
일단 금융권에서는 이들의 상환자금 상당부분이 해외 채권에 재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외평채 보유 자산가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금융권에서는 외평채 과세가 농특세 1.4%에 불과하고 8.875%의 이자를 반기마다 지급하는 구조인 만큼 외평채 투자자들이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에 절세형 상품에 관심이 많다고 보고, 비과세 국채 및 물가연동국채, 저쿠폰 지역개발채권, 해외채권 등의 상품을 중심으로 고객 끌어모으기에 나섰다. (관련기사☞외평채 3조원 만기도래..금융권 마케팅 후끈)
이중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해외 채권이 가장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한 증권사 관계자는 "외평채에 투자했던 거액 자산가들은 돈을 늘리기 보다는 지키는데 주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세효과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국내에 투자하기 보다는 외평채와 비슷한 조건의 비과세 해외 채권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증권사들이 브라질 채권을 전면에 내세워 집중 마케팅을 전개함에 따라 해외 투자로 다시 연결될 여지가 크다.
최근 외평채 만기 고객을 대상으로 브라질 국채 특판에 나선 한 증권사 관계자는 "브라질 국채가 비과세인데다 듀레이션 2.5년 정도인 국채의 이자는 9.5%에 달한다"며 "게다가 최근 브라질 헤알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거액 자산가들에게 권하기에 이만한 상품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헤지..당국 면밀 워치
거액 자산가들이 외평채 상환자금 상당부분에 대해 환헤지를 해 놓은 상태여서 당장 외환시장에 큰 영향은 큰 쇼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외평채 상환자금을 국내에 투자할 계획이었다면 선물환을 통해 환헤지를 해놓았을 것이고, 이는 곧 원화로 받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삼성선물 전승지 애널리스트는 "선물환 계약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원화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외평채 상환으로 현물시장에는 영향이 없고 선물환 하락압력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H투자선물 이진우 부장은 "당시 금융권이 외평채를 재판매하면서 환헤지까지 해줬다면 외평채 투자자는 선물환을 매도했을 것이고 금융권은 선물환을 매수하면서 현물환을 팔았을텐데 그 현물환은 주로 차입했을 것"이라며 "이번 상환받은 달러로 투자자들은 선물환 매도분에 대해 현물환을 인도하고 은행은 차입했던 부분을 갚으면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가 보유하고 있었던 외환보유액 가운데 20억달러가 일단 국내 시장에 풀리는 것인 만큼 큰 그림상 달러 공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국은행과 함께 외평채 투자 자금이 어느정도 환헤지를 했는지를 조사중"이라며 "이에 따른 수급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 역시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까지 외평채 상환이라는 변수를 경험하지 못했던 터라 심리적으로라도 영향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20억달러면 작은 규모는 아니다"라며 "배당금 역송금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상황에서 만약 외평채 만기 상환자금이 나온다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법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이같은 물량이 출회된다고 해도 시간을 두고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만약 단기간에 출회된다면 당국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실제 현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 기사는 15일 오전 10시6분 이데일리 유료서비스인 `마켓 프리미엄`을 통해 출고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