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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生시대①)中企성공 `은행`이 이끈다

김기성 기자I 2004.11.08 11:05:00

`中企 악순환 고리 끊어라`..은행 역할론 부각

[edaily 김기성기자] 은행들이 경기침체 장기화로 시름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는 커녕 무분별한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유망한 중소기업들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자금 중개 기능을 통해 경기 과열기에는 열기를 식히고, 경기 침체기 때는 불씨를 지피는 경기조절적 공적 기능을 무시한 채 `제 살길 찾기`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국가 경제의 실핏줄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경제수장들이 내뱉은 경고성 발언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비올 때 우산을 빼앗고 있다"고 비유적으로 은행을 질타했고, 윤증현 금감위원장겸 금감원장은 "은행들이 기업을 등쳐먹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은행들도 할말이 많다. 경기 침체기에는 위험관리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은행만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또 중소기업과 `윈윈`할 수 있는 제도를 나름대로 시행하고 있고, 실제 성과도 많은데 너무 몰라준다는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금융지원 없는 중소기업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실제 성공한 중소기업 뒤에는 언제나 든든한 은행이 지원자로 버티고 있었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지원 활동과 성공사례 등을 통해 상생(相生)의 희망을 찾아본다. ◇악순환구조 되풀이되는 中企..`은행 역할론 부각` = 2002년말 기준 전국의 중소기업체수는 295만개로 종사자만 1039만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고용창출의 86%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게 중소업계의 주장이다. 그만큼 중소기업이 우리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둘러싼 악순환 구조는 경기침체기 때 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수에 의존하는 업종에 몰려 있거나 제조업체 대부분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경제구조의 마지막 하단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경기불황의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받는 취약한 구조적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어림잡아 전체의 80% 정도가 그렇다. 2002년말 현재 업종별 분포를 보면 도소매업이 89.3만개(30.3%)로 가장 많았으며 숙박음식업 63.5만개(21.5%), 제조업 33.2만개(11.3%), 운수업 30.6만개(10.4%) 등의 순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은 지금처럼 경기 불황이 닥치면 `내수 부진→중소기업 침체→고용 및 국민 가처분 소득 감소→내수 부진 심화→중소기업 침체 가속...`이라는 악순환 구조가 확대 재생산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었고, 이같은 우려는 여지없이 현실로 나타났다. 중소제조업의 가동률이 19개월 연속 정상가동률인 80%를 훨씬 밑도는 60% 이하를 기록하고 있고, 9개월 연속 자금난을 호소하는 비율이 30%를 넘고 있다는 게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가계의 여유자금을 자금수요 주체인 기업에게 배분하는 은행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경기조절적 기능, 즉 흔히 비유하는 `비가오면 우산을 내주고, 해가 뜨면 우산을 거둬들이는` 역할은 은행의 몫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1년동안 가계 부실로 홍역을 치렀던 정부는 중소기업 부실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이면서 `은행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 회생→고용 증대와 소비 진작→내수경기 회복→정부의 경기부양책 효과 극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은행이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다. ◇"은행 제살찾기만 하면 부메랑 맞는다" = 은행들이 경기가 좋을 때는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줬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반대로 대출을 무차별 회수하는 경기순응적 `패거리식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은행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핵심이다. 경기 침체국면에서 `경기연착륙 선도`라는 공적 기능을 하지는 못할 망정 일시적 자금난만 벗어나면 성장할 수 있는 유망기업까지 `도매금`으로 사장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부실을 더욱 키워 경기 침체를 가속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금융회사의 부실을 심화시키는 `공멸`의 시나리오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잔액 추세를 보면 그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 실제로 대출잔액은 작년말 237.9조원에서 9월말 251.1조원으로 5.5% 증가하는데 그쳤다. 2002년과 2003년 각각 22.5%와 19.6% 증가한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모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은행에 대한 오해 많다..다양한 지원책 시행중" = 하지만 은행들은 경기회복 지연으로 중소기업의 연체율이 3% 안팎의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대출을 풀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은행 한 고위관계자는 "중기 대출을 늘리면 당장 영업이익이야 늘겠지만 1~2년 뒤에는 부실자산이 늘어나 결국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지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다"며 "여론몰이식 은행 책임론에 대한 위험성 역시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특히 은행들은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고, 그동안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성공사례도 많았는데, 이러한 노력들은 너무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우선 개별 은행은 저마다 중소기업 자금지원책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최근 총 4.8조원의 특별지원책을 마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은행들이 시행중인 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그리고 공동워크아웃도 같은 맥락이다. 자금난에 처했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채무상환 유예, 금리 인하, 출자 전환 등 채무 재조정을 통해 회생을 지원하는 게 이들 제도의 공통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9월말 현재 300개 정도의 중소기업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거나 추진중이다. 또 2개 이상의 채권금융기관이 얽혀 있어 워크아웃 시행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지난 6월 은행권의 협약이 마련된 이후 16개의 공동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 라면 연말까지 30개 정도의 공동워크아웃이 진행될 전망이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도 자금, 생산, 인사, 회계, 세무, 법률 등을 아우르는 종합컨설팅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국민은행의 중국 진출 중소기업을 위한 `도우미 제도`, 종합자금서비스 프로그램인 `사이버 CFO`를 비롯해 우리은행의 경영 토털 서비스, 기업은행의 `자가 경영진단 프로그램`, `중소기업 법률지원단`, `중국기업 신용조사 서비스`, 외환은행의 `중소기업컨설팅센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상품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지난 8월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전 은행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네트워크론이 대표적인 상품. 네트워크론은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으로부터 제품을 주문받은 뒤 납품주문서를 근거로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을 받아 은행에서 물품대금을 대출받는 제도. 중소기업이 생산자금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어 경영안정을 도모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 기업 신한 하나 등 은행들의 중소기업 전문 사모펀드(PEF) 설립도 붐을 이루고 있다. 이들 펀드는 뛰어난 기술력과 성장성을 보유했으나 자금력이 부족해 애로를 겪고 있거나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투자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지원의 자금원으로 한몫할 뿐만 아니라 대출 위주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을 투자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 지원의 99%가 대출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경우 34%가 투자방식이다. ◇옥석가리기 위한 CB 등 제도적 정비 시급 =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을 갖추지 않는 한 지금처럼 신용등급과 연체여부 등을 기준으로 대출을 무조건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관행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술력과 잠재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골라낼 수 있도록 중소기업 평가시스템(CB)를 시급히 정비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은행들도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한편 중소기업은 회계 투명성을 높여 금융권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기업 경쟁력 확보를 미래의 성장성을 만드는 기초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한 자금지원 등 단기지원책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그래야 경쟁력있고 성장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항상 지원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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