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mp 2020)이현순 현대차 부회장 "한때 사기꾼 취급도···"

김상욱 기자I 2010.04.02 09:32:57

[이데일리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
"올해 미국시장서 가장 높은 점유율 기록할 것"
"현대차 고유의 가치 제공하겠다"

[이데일리 김상욱 기자] "한때는 경영진들에게 국산엔진 개발이라는 허황된 꿈을 심는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동안 보직해임을 당해 기술 자문역으로 지내기도 했지요."

이현순 현대자동차(005380) 부회장.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대차의 엔진기술을 개발해 온 주인공이다.

이 부회장은 아직도 현대차 최초의 독자개발엔진인 `알파엔진`이 시험실에서 힘차게 돌아가던 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대당 수천만원짜리 엔진이 수십대씩 깨져나갈때의 아픔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감동이었다.

▲ 이현순 부회장
이 부회장은 창간 10주년을 맞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회사 내부의 극심한 반대가 가장 힘들었다"며 "많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자 엔진을 개발해야 하냐는 의견이 개발기간 내내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개발한 알파엔진은 이 부회장은 물론 현대차에게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베타엔진을 거쳐 개발된 쎄타엔진은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됐다.

알파엔진 개발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의 V8 타우엔진은 당당히 세계 10대 엔진에 2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글로벌기업들이 현대차와 `같이 일해보자`는 의사를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시선은 여전히 먼 곳을 향해 있다. 그는 "아직 많은 것이 진행중"이라며 "현대차의 기술력이 인정을 받고 있지만 친환경 자동차 기술과 혁신적인 미래 신기술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현순 현대자동차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현대차에 입사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최근 현대 기아차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현대차로부터 엔진개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84년 입사를 했을 당시 한국 자동차산업은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대부분의 자동차 기술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었고 생산설비도 매우 미약했다. 당시 현대차는 연산 10만대 이하의 작은 회사였고 연구소도 450명 정도였다.

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현대.기아자동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고, 제이디파워를 비롯한 각종 평가 기관에서도 다수의 차량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요즘 현장에 나가면 달라진 것이 있다. 글로벌 부품사들에게서 우리와 적극적인 협업을 해보자는 요청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글로벌 기업들이었는데, 이제는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우리와 협업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현대기아자동차의 위상이 높아지고, 세계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임이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입사이후 줄곧 엔진개발을 담당했다. 91년 독자기술로 만든 1500cc 알파엔진에 이어 99년까지 경차에서 대형승용차에 이르는 가솔린 엔진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2004년에는 엔진기술 수출의 효시인 쎄타엔진을 개발했다. 쎄타엔진은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 설계도면과 생산기술 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5700만달러의 로열티를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역시 알파엔진 개발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회사 내부의 극심한 반대가 가장 힘들었다. 불확실한 엔진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 현대차가 지난 91년 자체기술로 처음 개발한 알파엔진. 현대차는 알파엔진 개발을 시작으로 독자적인 엔진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경영진들에게 국산엔진 개발이라는 허황된 꿈을 심어주는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에 개발책임자에서 해임당해 6개월간 기술 자문역으로 지내기도 했다.

1985년10월 처음으로 알파엔진 시제품을 만들어 프로판 가스로 시운전을 했다. 하지만 86년8월부터 시작된 알파엔진 내구시험에서는 거의 일주일에 한대씩 엔진이 깨졌다. 대당 5000만원짜리 엔진이 20여대 가량 깨져 나갔다.

여기서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멸감과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정말 힘이 들었다. 일부 직원들은 산에 올라 펑펑 울다가 내려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과정을 거쳐 91년1월 마침내 알파엔진과 알파트랜스미션 개발을 완료했다. 시험실에서 알파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던 순간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올해 미국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 기록할 것"

-현대차의 올해 글로벌 전략에 대해 설명해달라.

▲IMF 자료를 보면 올해 신흥시장 경제의 예측 성장률이 5.1%로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시장의 1.3%에 비해 매우 높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가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다만 중국, 인도에 대한 경쟁업체의 적극적인 진입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소비자 니즈를 반영시킨 전략차의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미국시장에서의 전망은 어떤가?

▲미국은 현대.기아가 올해 판매목표 540만대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시장중 하나다. 올해 미국시장 신차중에선 쏘나타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쏘나타에는 연료를 10% 적게 사용하면서 높은 출력을 내는 2.4리터 쎄타2 가솔린 직분사 엔진이 최초로 장착됐다.

하반기 미국 출시예정인 에쿠스는 소형차에서 고급 대형차까지 전체의 라인업을 마무리 지으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한단계 높이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거다. 기아차는 쏘렌토R, 스포티지R, K5 등의 신차를 집중 투입해 3%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경쟁력 있는 신차와 함께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면, 미국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미국시장에서 먼저 출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미국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그렇다. 북미시장은 적당한 수준의 차량을 출시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현대차가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북미에서 먼저 출시하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국내 하이브리드 시범운행,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양산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타사 동급 차량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모터 용량으로 동일한 성능을 확보할 수 있어 연비, 성능 면에서 효율이 우수한 시스템이다. 적용된 주요 핵심 전기동력 부품도 모두 국산화에 성공했다.

-타우엔진은 물론 최근 출시한 쏘나타 2.4GDI엔진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엔진개발 전략은?

▲ 현대차의 V8 타우엔진. 워즈오토가 선정한 세계 10대 엔진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의 엔진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중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2016년 북미 평균연비 규제 및 2015년 유럽 CO2 규제를 만족하기 위한 파워트레인 연비 신기술을 개발해 출시하는 것이다.
 
GDI 및 터보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다운사이징 기술, 엔진 자체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 하이브리드 차량에 최적화된 파워트레인을 개발해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고성능 엔진 역시 개발하고 있다. V8 타우 엔진은 최근 배기량을 5.0리터로 상향해 출시했고, 앞으로 독자개발 8속 자동변속기와 조합해 성능과 연비를 향상시킬 예정이다. 미국 연구소와 함께 현지에 적합하고 성능이 20~30% 향상된 슈퍼차저 엔진도 개발중이다.

◇"현대차 고유의 가치 제공하겠다"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현대차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현대차는 앞으로 가격 대비 구매 가치가 좋은 차(Value for money)의 단계를 넘어 현대차 고유의 가치 제공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향후 성장동력을 첨단 신기술과 자동차와의 접목으로 선정하고, 첨단 IT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할 계획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IT기술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현대차를 인포테인먼트 분야의 선두주자로 만들겠다. 또 앞으로는 신기술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겠다.

최근 세계 자동차시장 최대 이슈는 `향후 친환경차 주도권을 누가 잡는가`로 귀결되고 있다.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연비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동차업체마다 친환경차 개발을 미래의 생존을 좌우할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현대차 역시 친환경차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친환경 자동차 정책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열악하다는 견해들도 있다.
 
▲ 친환경차 개발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초기 시설투자 비용이 들어간다. 반면 수익성이나 시장전개 시기는 매우 불확실해 위험성이 있는 큰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은 미래 자동차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 같은 투자비용 지원과 함께 친환경차 구매시 보조금 지원, 세금 및 보유세를 낮춰주는 등의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러 지원책을 실시하거나,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다만 더욱 확실한 주도권을 잡고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선 선진국보다도 더 각 부문에서 유기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상호 협력 개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이브리드뿐 아니라 전기차나 연료전지차의 경우에도 초기 수요처의 확보 및 각종 제도 정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가령 관용차의 일정 비율을 친환경차 사용으로 의무화한다면 자동차업체로선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전기차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전기차는 석유대체와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서 꼭 필요한 차량이다. 다만 지금은 배터리 성능과 가격이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걸쳐 양산차가 출시될 예정이고 2012년에는 소형차부터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차 디자인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려달라.

▲현대차의 디자인 조형철학은 `Fluidic Sculpture`다. 현대차 고유의 디자인 언어로 향후 개발될 현대의 모든 차종에 적용된다. `Fluidic`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유체역학적 자동차 디자인으로 융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Sculpture`는 현대차 디자인 고유의 조각적인 모델링 과정을 의미한다.

현대차는 시장최적화 디자인을 통해 지역별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계획이다. 시장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 개발로 현대차의 글로벌 디자인 경쟁력을 강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거다.

-올해 개인적으로 세운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지난해 두개의 의미있는 큰 상을 받았다. 하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최고과학기술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공학한림원 대상이다. 이 상들은 나보다 현대차에 주어진 상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의 공적을 넘어 한국 기술 발전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 더욱 노력해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난 해부터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에도 더 많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선물해 주고 싶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이데일리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21세기를 움직이는 힘은 빠르고 정확한 정보다.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이데일리는 이같은 정보들을 어느 매체보다 신속하게 대중에게 전달해 온 대한민국 인터넷 경제 신문의 대표 주자다. 창간 10주년을 계기로 이데일리는 새로운 언론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뉴미디어 시대의 선도 매체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데일리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인터넷 매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