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 팍스`가 체포되자 그동안 차별정책에 당하고만 살았던 흑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당장 그날 저녁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흑백분리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당시 26세의 젊은 목사를 `보이콧` 운동의 리더로 뽑았다. 다름 아닌 마틴 루터 킹 주니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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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민권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행진 집회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그는 연설에서 "나에게는 언젠가 조지아주의 언덕위에서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이었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Table of Brotherhood)`에 함께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킹 목사는 또 "앨라배마주에서도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거닐게 됐으면 하는 꿈이 있다"고 밝혔고,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격에 의해 평가되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다"고도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킹 목사의 꿈은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유색인종 출입금지` 간판을 내걸은 식당이나 건물은 미국 전역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버락 오바마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것만 봐도 더욱 그렇다.
현재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소송을 당하기 십상이다. 철없는 초등학생이 내뱉은 말 조차 소송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또 정치인들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면 이는 `낙선의 보증수표`와 다름없다.
그렇다고 유색인종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부 앨라배마주에 거주하다 뉴욕으로 이사온 김영철(가명)씨 부부는 몇 년전 남부 지역의 한 시골 주유소의 화장실을 이용하다 백인들의 모멸적인 눈초리에 기분이 상했던 경험이 있다. 이들 부부는 특히 남부의 시골 지역에서는 흑인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사실 요즘 들어선 경제적인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많은 흑인들이 감격에 겨워했지만, 흑인들의 경제적 사정은 더 나빠졌다. 법이 무서워 대놓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지만 무형의 인종 차별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히스패닉이나 아시안 아메리칸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백인들에 비해 차별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흑인의 경우 같은 대학을 나와도 봉급이 백인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기업들이 불황으로 감원을 할 경우에도 흑인을 먼저 내쫓고, 경기가 나아져 채용을 할 때도 흑인들은 늘 뒷 전이다. 실제 흑인과 백인간의 실업률 격차는 2007년 8월 3.5%포인트였지만 리세션 한파가 영향을 미친 2009년 12월에는 백인 9.0%, 흑인 16.2%로 그 격차가 7.2%포인트나 벌어졌다.
미국은 오늘(18일) 25번째 `마틴 루터 킹 데이`를 맞이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권 운동에 힘쓰다 지난 1968년, 39살의 젊은 나이로 암살범의 총탄에 쓰러진 킹 목사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오바마 대통령도 워싱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킹 목사의 정신을 기렸다. 오바마는 이틀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한다. 오바마가 잔여 임기중 미국 경제도 살리고, 흑인들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과연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