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수헌기자] "방향은 분명히 잡았는데 해결의 강도와 깊이가 아직 미흡하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내린 참여정부 2년반의 경제정책 총평이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의 경제부문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평가점수는 사실상 `낙제` 수준이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경제점수는 100점 만점에 40~50점대를 맴돌고 있다.
평가자를 경제전문가로 바꿔도 점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일부 대학교수들은 최근 "잃어버린 2년"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혹평하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은, 살을 좀 붙여 표현하자면 "이제는 좀 경제를 살리는데 매진해 달라"는 것이다. 앞으로 참여정부가 노력해야 할 제1과제로 대부분 국민들은 경기회복을 꼽았다.
이런 결과에는 "경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겠다, 경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언해 온 참여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여전히 미덥지 않게 여긴다는 뜻이 담겨있다.
또 그만큼 지금 경제상태로는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초라한 경제성적표..경기회복 강력주문
지난 2년반동안 참여정부가 내놓은 초라한 경제성적표는, 왜 국민들이 점수를 짜게 줄 수밖에 없는지, 경제살리기를 또다시 강력하게 주문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4%에 못미칠 전망이다. 애초 목표치 5%에서 1%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연 7% 성장, 해마다 50만개 이상 일자리 창출, 빈부격차 양극화 해소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경제성장률은 3.1%, 2004년 4.6%, 올해는 상반기 3%, 연간으로는 3.8%(한국은행 KDI 삼성경제연구소 등 전망치)로 예상돼, 아직 한번도 잠재성장률 수준인 5%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자리는 지난해 43만개가 생겼지만 올해는 목표치 40만개를 이미 30만개로 낮췄다. 2003년에는 일자리가 3만개가 줄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3년동안 창출한 실제 일자리는 겨우 70만개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청년실업률은 8%대에 머물고 있어 개선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성장과 분배를 통한 동반성장을 추구했지만, 국민들간 소득격차는 오히려 확대돼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양극화의 골은 깊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초기 정책타워 청와대, 지금은 부동산 컨트롤
참여정부의 출범 이후 경제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전(前) 정권의 유산인 카드 부채, 신용불량자 문제 등으로 민간소비가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등 내수경기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출범 초기 미-이라크전 발발과 사스(SARS) 발생 등은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고, 2003년초 30달러 수준이던 유가가 올 8월에는 56달러 수준까지 오르는 등 거의 2배 가까이 상승할 기세다.
악재를 안고 출범한 참여정부의 초기 경제철학에는 `분배`가 강하게 담겨있었다. 양극화 해소를 통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분배에 무게를 싣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었다.
첫 경제팀 수장으로 발탁된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이정우 당시 정책실장 등 청와대 라인에 밀려 소신을 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참여정부 초기에는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판단해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일이 많았다"고 밝혀, 당시 김진표 경제팀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뒷받침했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경제팀 수장이 성장주의 시장경제론자인 이헌재 부총리로 교체되자 기대가 높아졌다. 이른바 386과의 갈등이나 분배론자들의 잦은 공격 등에도 이 부총리는 잘 버텼지만 공직자 부동산 파동을 피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이 부총리는 올해 2월 사석에서 "3~4월까지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성장 5%와 일자리 40만개가 물건너가는 등 계획들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우려는 결국 현실화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한덕수 부총리는 부동산에 올인하는 경제수장이 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지난 10·29 부동산대책보다 더 강력한 8·31대책을 준비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첫 해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세제·금융·주택공급 등을 묶은 10·29 대책을 내놓았고, 1년 정도 약효를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올들어 강남 등 특정지역 집값은 더욱 뛰었고, 각종 개발계획의 영향으로 전국에 걸친 땅값 상승현상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강도가 셀수록 부작용이 크고, 정책의 약효가 떨어질 때 생기는 반작용도 심하다"며 "8·31 대책의 후유증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후반기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 매진, 투자 살리기 나서라"
전문가들은 참여정부가 후반기에는 저소득층 자활능력배양이나 사회안전망 확충 뿐 아니라 금융·기업부문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 서비스경쟁력 강화, 중소기업 구조조정, 성장잠재력 확충 등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정우 전 실장은 최근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분배정책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가는게 아니고 아직도 분배를 제대로 못해서 안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참여정부 정책 `때문에` 분배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책에도 `불구하고` 분배가 나빠졌고 부동산값 상승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로, 무엇무엇 `때문에` 경제가 안 좋아졌다고 변명하지 말고 무엇무엇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호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도록 경제살리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치에 올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국민들은 경제에 올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업투자를 살려야 한다"며 "기업투자가 고용창출 및 소비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조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