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소규모 밴(VAN)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진흥(가명·44)씨는 금융결제원의 카드 단말기를 가맹점에 깔아주고 고객이 카드로 한번 결제할 때마다 금융결제원으로부터 20~30원 정도 수수료를 받는다. 김씨는 3년간 매월 10만건의 결제건수를 채우겠다는 약정을 맺고 단말기도 5년간 무상으로 빌리기로 했다. 하지만 1년도 안돼 폐업하거나 결제건수가 저조한 카드가맹점들이 속출하자 금융결제원은 김씨에게 남은 기간 동안의 단말기 비용과 미달건수에 대한 위약금(이른바 페널티)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위약금은 김씨가 받기로 한 수수료의 2~3배 가량인 건당 75원으로 총비용은 6000만원이 넘었다.
신용카드 결제대행사인 밴사들이 가맹점 모집과 관리, 단말기 설치, 전표수거 등을 위탁대행하는 밴대리점에 페널티 금액을 과도하게 청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금융결제원은 비영리 법인임에도 직접 밴사업을 하며 과도한 수익을 챙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데일리가 입수한 ‘밴사별 영업지원 기준안’에 따르면 금융결제원은 밴대리점에게 가맹점 승인수수료와 매출전표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 외에 타 밴사 가맹점을 뺏어와 신규 가맹점으로 유치할 경우 ‘가맹점 유치 장려금’을 준다. 보통 3년간 단말기 유지기간과 할당 건수를 미리 계산해 선지급하는데 만약 계약가맹점이 기간만료 전 계약을 해지하거나 결제건수가 기준에 미달하면 금융결제원은 유치장려금에 페널티를 부과해 회수한다.
한 밴대리점 대표는 “단말기 1대당 월 65건의 기준건수를 충족 못하거나 거래건수가 9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지원금액의 2배 정도인 건당 70~100원의 페널티를 내기도 했다”며 “금융결제원이 준 수수료가 5000만원이 넘었지만 결국 3년간 받은 금액의 40% 이상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밴대리점들이 밴사로부터 받는 페널티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당수 밴대리점들이 밴사의 페널티 부담 때문에 사업을 접었을 정도다. 이를 피하기 위해 경쟁 대리점이 관리하는 가맹점을 상대로 벽걸이TV, 컴퓨터, 현금 등을 제공하며 가맹점 확보경쟁을 벌이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앞서 밴대리점 대표는 “목돈을 선지급 받다보니 처음엔 신이 나지만 가맹점의 80%가 1~2년 안에 문을 닫으니 (금융결제원과 맺은) 3년 계약이 노예계약이 돼버리는 것”이라며 “사업유지비와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적자를 근근이 면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 염치없는 공공기관, 리베이트 챙겨
금융결제원은 은행권 공동전산업무와 어음교환, 지로 서비스 등을 위해 은행들이 출자해 세운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사실상 공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따로 경영공시를 하지도 않고 감독기관도 명확하지 않다. 이렇다보니 다양한 부대사업 중 수입이 짭짤한 밴사업을 적극 확장하고 있다는 게 밴업계의 관측이다.
실제 금융결제원이 국민·신한·삼성 현대·롯데·하나SK등 6개 전업 카드사로부터 받은 수수료는 2010년 311억5400만원, 2011년 333억원, 2012년 353억원으로 3년간 1000억원에 달했다. 금액도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밴사업이 본업과 전혀 관련없지 않을 뿐더러 명시된 사업범위 내에서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페널티 부과 기준이나 금액도 업계 최저 수준이며 희망하는 대리점에 대해서만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금융결제원처럼 밴사업을 직접 하진 않지만 다른 공기업들도 밴을 통한 수익확보에 열을 올리기는 마찬가지다.
도로공사·철도공사·우정사업본부 등 공기업들은 국민들로부터 받는 공공요금 신용카드 납부 서비스 과정에서 밴사로부터 수십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
이들 기관은 시스템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전기세, 사회보험료, 연금보험료 등 공공요금을 카드결제로 받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은 밴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전혀 없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중소가맹점 등 사회적 ‘을(乙)’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제 잇속을 챙기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지난 2010년부터 우편요금 결제 카드 업무 과정에서 기반시설 이용 대가로 밴사로부터 2억여 원 리베이트를 받았던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올해부터는 리베이트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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