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는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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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기 침체를 이해하려면 인구 구조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일본은 지난 30년간 전체 인구가 감소했고, 지방 도시에서는 고령화와 청년층 유출로 주거 수요가 붕괴되었다. 빈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생활 인프라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도쿄만큼은 달랐다. 글로벌 금융 허브이자 기업 본사가 밀집한 수도권은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며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도 이 점에서 유사하다. 전국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지만 서울·경기·인천으로의 집중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일자리, 교통망, 교육·문화 인프라가 결합된 수도권은 도쿄처럼 주택 수요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단순히 인구 감소를 근거로 한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을 겪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공급 환경은 정반대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공급 과잉과 마이너스 금리가 겹치며 시장이 침체했다.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주택이 과도하게 공급되었고, 가격은 반등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공급 부족이 오히려 문제다. 서울의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은 줄고 있으며, 2026~27년에는 이른바 입주 절벽이 예고되어 있다. 분양가상한제, 인허가 지연, 자재비 상승 등이 겹치면서 단기간 대규모 공급은 어렵다. 정부가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역세권 복합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입주 물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필요하다. 공급 부족은 장기 침체 요인이라기보다 가격을 지탱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 조율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으로 정책 일관성이 무너졌다. 지역마다 규제가 달라 대응이 분절적이었고, 도시 계획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중앙정부 주도의 공급 드라이브가 강화되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리모델링 규제 개선, 정비사업 절차 단축 등이 시행되며 공급 기반을 넓히고 있다. 일본이 정책 실패로 시장을 방치했다면 한국은 오히려 적극적 개입을 통해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세제 구조 역시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일본은 보유세가 낮아 다주택 보유에 따른 세금 부담이 거의 없었다. 버블기에는 주택 과열을 막는 장치가 사실상 부재했다. 반면 한국은 종합부동산세 인상, 공시가격 현실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강력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경험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다주택자들이 대규모 매물을 쏟아내며 시장이 급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금 여력이 있는 수요자와 갭투자 세력이 매수에 나섰다. 실제로 강남·분당·과천 등 주요 권역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며 시장이 버텨냈다. 이는 단순히 보유세가 낮으면 투기가 심화된다는 일본 사례와 한국 시장을 동일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금리 정책은 더욱 뚜렷하다. 일본은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치적·경제적 제약에 묶여 초저금리와 마이너스 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다. 이로 인해 시장은 활력을 잃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2021~2023년 사이 기준금리를 3.5%까지 빠르게 인상했다. 정치적 반대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물가 안정이라는 책무를 수행한 것이다. 현재는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 기조로 전환하면서 한국 역시 금리 인하 시점을 고민하는 단계다. 일본처럼 올려야 하는데 못 올린다가 아니라, 언제 내릴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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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일본 버블에 단순히 빗대어 하락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수도권 수요 집중, 입주 절벽, 정책 드라이브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 있다. 일본조차 현재는 장기 불황이 아니라 상당기간 상승 국면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버블을 단순 소환하는 것은 설명력이 떨어진다. 한국 시장을 읽는 핵심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수도권 수요, 입주 절벽, 정책 전환이라는 현실적 변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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