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엣지있는 당신의 릴렉스한 위크엔드를 위한 이번 시즌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이 단어들의 조합을 두고 혹자들은 ‘보그 병신체’라고 지칭한다. 독자들에게 전달을 하기보다 허례허식에 물든 이런 문장은 여성지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대표적인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이름을 따 ’보그 병신체‘라고 비웃은 것이다.
우리 증시에서도 이런 문제점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아침마다 발간되는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보면 ‘보그 병신체’ 못지않게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기괴한 문장들이 적잖이 발견된다. ‘펀더멘털’이나 ‘턴어라운드’, ‘모멘텀’처럼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돼 버린 단어들은 문제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이 업종은 글로벌 증시 대비 저밸류에이션의 메리트가 있고 엔저 피크가 둔화되면서 견조한 성장모멘텀도 기대된다. 그러나 영업레버리지가 낮은 종목에는 슬림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체할 만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다. 이 정도 되면 이해가 되는 둥 마는 둥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는 문장이 돼 버린다.
애널리스트는 증시를 분석하는 동시에 전망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다보니 분석도 빛바래고 만다. 애써 분석한 보고서를 스스로 깎아먹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증시에 비교적 눈이 어두운 개인 투자자나 초보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나오는 용어들은 증권을 업으로 다루는 펀드매니저 등 기관투자가나 증시에 매우 해박한 일부 개인투자자에게만 익숙할 뿐이다.
물론 애널리스트들의 가장 큰 수익원은 펀드매니저 등 기관투자자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보고서는 설득력도, 생명력도 얻을 수 없다.
사실 보고서가 가장 필요한 투자 주체는 개미다. 기관에 비해 정보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나 소문에 흔들리기 십상이다. 지난해 대선 테마주 광풍과 올해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열기 등에 가장 크게 손해 입었던 이들이 개미투자자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기업 재무상황의 맥을 짚어주고 향후 전망을 짜임새있게 분석해주는 보고서가 많아진다면 개미투자자들에게 좋은 투자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