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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재심…"진실 규명 기회, 동료들 용기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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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I 2026.03.30 06:15:03

'건대항쟁' 박영일 씨 공산혁명분자 몰려 옥살이…法, 40년 만에 재심 결정
'우골탑' 아들 구속에…"아버지 '배신감' 편지, 평생의 한"
"청구 3개월 만에 신속 확정… 사법부 의지 다행스러워"
"재심 대상이라 생각 못해…동료들도 명예회복 용기내길&...

[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변호사에게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멍해질 정도로 놀랐습니다. ‘벌써 결과가 나올 리가 없는데 진짜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죠. 너무 흥분해서 도서관인 것도 잊고 통화하다가 시끄럽다고 핀잔도 들었습니다.”

이른바 ‘건대 사건’(1986년 10·28 건대 항쟁)에서 공산혁명분자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박영일(61) 씨가 40년 만에 법정에서 무죄 증명의 기회를 얻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일 “불법체포·불법감금 상태에서 수사받았고 그 과정에서 구타·고문 등 폭행·가혹행위가 이뤄졌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박씨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최근 이데일리와 만난 박 씨는 “통상 1년 가까이 걸리는 재심결정이 3개월만에 나온 건 이례적”이라며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신속히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다행스럽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서울고등법원의 사건 재심 결정문을 들고 있는 박영일 씨. (사진=이지은 기자)
건대 사건은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전국 26개 대학생 2000여명이 건국대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 후 점거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황소 1호’ 작전으로 강제 해산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친소·반미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하고 1525명을 연행해 그중 1285명을 구속했다. 이는 공안 정국을 조성해 민주화 동력을 억누르려 한 대표적인 시국 사건으로 꼽힌다.

탈춤반 활동을 하던 평범한 대학생이던 박씨는 대학교 3년으로 비교적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학생운동 주동자급이 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충남 금산에서 아버지가 황소를 팔아 마련해준 등록금 80만원으로 상경한 ‘우골탑’ 세대에게 아들의 구속은 가문의 비극이 됐다. 박씨는 “당시 아버지가 보내신 편지에는 딱 두 줄, ‘나는 너를 믿었다. 배신감을 느낀다’고 적혀 있었다”며 “부모님께서 받은 충격이 제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회상했다.

수사 과정은 폭력과 조작으로 점철됐다. 박씨는 “조서철 표지에 ‘건국대 공산혁명분자 난동사건’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정권이 사건을 용공으로 조작하고 있음을 직감하며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새벽 3~4시마다 잠을 깨워 취조하는 ‘잠 안 재우기 고문’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대였다. 결국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네가 돌을 던졌느냐’는 형사의 유도 질문에 시인한 게 유죄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면복권이 이뤄지면서 박씨의 일상은 회복됐다. 그도 시간이 지나면서 ‘전과’를 민주주의의 훈장쯤으로 여기게 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1·2기에서 근무하며 과거사 업무를 직접 담당하면서도 정작 본인 사건의 재심 청구는 생각지 못했던 이유다. 박 씨는 “당시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간첩 조작 정도는 돼야 재심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를 다시 법정으로 이끈 건 ‘역사의 기록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주변의 설득 때문이었다. 박씨는 “최근 재심 결정 기사를 본 딸이 ‘아빠 전과자였느냐’고 묻는 것을 보고 기록의 무게를 새삼 실감했다”며 “내가 아무리 당당해도 재심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과거의 잘못된 기록은 영원히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개인적인 자부심과는 별개로, 사법 기록상 ‘반국가 세력’으로 박제된 역사를 무죄 판결로 다시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싹 튼 것이다.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영일 씨. (사진=이지은 기자)
건대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 세계 최다 구속자(1285명)라는 비극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과거의 박 씨처럼 “어차피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는데 굳이 다시 재판까지 해야 하느냐”며 재심 신청을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후세들을 위해서라도 기록을 바로잡아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동료들에게 명예 회복을 위한 용기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박 씨에게 재심은 40년 전 찍힌 낙인을 지워 나가는 첫 단계다. 그는 “재판부가 군부 정권에 저항했던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갖는 의미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해주길 기대한다”며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바로잡고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과거사 정리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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