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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는 23일(현지시간) 자신의 개인 블로그 ‘게이츠노트(GatesNotes)’에 ‘현 시대 최초의 팬데믹(The first modern pandemic)’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게재하고 “경제와 복지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코로나19 확산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백신 개발 △감염 진단 기술 확보 △접촉자 추적 기술 개선 △올바른 공중보건 정책 부문에서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게이츠는 코로나19를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고 현재 상황을 세계대전에 비유했다. 그는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류의 건강, 부, 복지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 모두가 같은 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세계 대전과 같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와 어뢰, 암호해독 등 놀라운 혁신이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전염병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다음과 같은 5대 분야를 제시했다.
◇ 치료제 개발
게이츠는 수많은 치료제가 개발에 실패하겠지만 일부는 분명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95% 이상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게이츠는 “스포츠 경기나 콘서트 등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에 가도 된다는 확신이 들게 하려면 치료 효과의 임계점이 95%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혈장치료 또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하는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가 치료제로서 가장 유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혈장치료는 코로나19 완치자 혈액으로부터 채취한 혈장으로 확진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 백신 개발
95% 이상의 효과를 내는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백신은 필수적이라고 게이츠는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은 백신 개발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백신 개발 시점에 대해서는 보통 5년 이상 소요되지만, 코로나19는 수많은 연구기관 및 제약회사 등이 백신 개발 경쟁에 뛰어든 만큼 1년 6개월 이후에는 나올 수 있다고 낙관했다. 다만 그는 “세 번째 임상시험 기간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기간에 전체적인 안전성과 효능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더 빠른 개발을 위해서는 자금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게이츠는 백신과 관련해 특히 “노인 계층에 효과가 있는지를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들의 경우 면역체계가 백신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백신이 개발되고 나면 원활한 공급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게이츠는 빠르고 안전한 확진 여부 진단을 위해 코로나19 의심자가 집에서 테스트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증상자 및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부터 무증상자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진단 속도를 높여 하루 만에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확진 여부를 알기까지 약 7일이 소요된다. 게이츠는 검사 역량을 크게 높이는데 기여한 나라로 한국을 꼽으면서도 테스트 횟수를 늘리는 것이 진단 능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효율적 감염자 추적 시스템
게이츠는 신속한 진단 능력을 갖추려면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추적 시스템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검사하고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확진자를 인터뷰한 뒤 접촉자들을 추적하는 독일의 방식 역시 다른 나라들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감염 의심자 추적을 위해 휴대폰 위치나 카드 결제 기록 등을 활용한 한국의 추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서방 국가들은 해당 기술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제공 의사가 있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고 설명했다.
◇2차 팬데믹 대비한 정책적 혁신
이 포스트에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게이츠가 포스트에 ‘팬데믹 I’이라고 적힌 바이러스 사진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팬데믹 II’, 즉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앞으로 2개월 안에 대부분의 선진국이 팬데믹 2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규정한 2단계는 봉쇄 조치는 완화되나, 밀접한 접촉은 금지되는 반(半) 정상 상태다.
게이츠는 “사람들은 외출할 수 있지만 혼잡한 지역에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식당에 사람들이 각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고, 비행기 내 모든 중간 좌석은 비어 있을 것이다. 학교도 다시 열리겠지만 체육관을 가득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또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쓰겠지만, 전염병 이전보다 많이 소비하진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비정상적이겠지만 1단계 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이츠는 이같은 전망에 따라 정책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검사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로부터 배울 것을 주장했다.
한편 게이츠는 MS를 설립해 벌어들인 돈으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 1위 부호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달 MS 이사회에서 물러나며 사실상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현재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이사장으로 지내며 자선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2010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기부 약속 운동(the Giving Pledge)’을 시작하며 재산 95%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최근 코로나19 치료 및 백신 개발을 위해 1억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