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순 컬럼니스트] 이른 아침 출근길에 입김 하나가 살포시 피어오르다 마술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가을인가 싶어 단단히 추스른 옷섶 사이로 어느 틈인가 가을의 쓸쓸함과 풍성함이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튼다. 아파트 1층에 사는 덕분에 덤으로 주어진 작은 정원 감나무에도 엷은 분홍빛 감이 대롱대롱 열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신경은 너무도 대단해, 찌는 듯한 한 여름의 무더위와 온 사지를 두들긴 비바람을 이겨 내고서야 맺혔을 그 열매를, 한 순간에 만들어진 깜짝 선물로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올해도 아이들의 탄성에 가까운 응원을 받으며 까치발로 감을 따낼 생각을 하니 그저 흐뭇해진다.
올해는 나뭇가지를 심하다 싶게 치는 바람에 작황(?)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언 듯 보기에도 실속은 토실토실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올 펀드시장 역시 이래저래 풍성한 가을 잔치를 벌이고 따스한 겨울을 맞이할 것 같다. 채권형을 제외하면 수익률이나 규모면에서 이전에는 미처 거두지 못할 만큼의 과실을 소쿠리 가득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웬만한 악재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자금줄이 뿌리를 옹골차게 쥐여 잡고 있음이다. 주식형으로 늘어난 대부분의 자금이 적립식으로, 적립식 자금은 수많은 소액 투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투자되고 있다. 이러한 자금은 단기적인 주가하락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이나 앞으로의 투자자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풍요로운 가을이면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는 펀드가 있다. 배당주 펀드이다. 배당주 펀드는 배당성향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사실 국내에도 수시 배당이 확대되면서 배당주 펀드를 비단 연말을 앞둔 상품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계절이 오면 관심권내로 부상하곤 한다.
특히 작년 하반기 이후 현재까지 배당주 펀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04년 3월말 배당주 펀드는 공사모 포함해 5000억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05년10월10일 현재 그 규모는 6조5천억까지 늘었다. 1년 반 만에 무려 6조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배당주 펀드 중에서도 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성장형의 자금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펀드를 모집하는 공모형의 경우 성장형은 작년 3월말 대비 2조1000억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식편입비율이 낮은 안정성장형과 안정형은 각각 1조1995억, 1조7810억이 늘었다.
이렇듯 배당주, 특히 주식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성장형의 수탁고가 많이 늘어난 데는 2004년 하반기 이후 중소형 배당가치주 종목들이 주가상승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립식 투자가가 불을 지피는 시점에 배당주 펀드들의 수익률이 도드라진 점도 펀드수나 수탁고 증가에 폭발력을 가진 원인으로 분석된다.
배당주 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종목 구성시 시가총액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예컨대, 시장내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이 어찌됐건 배당주 펀드는 자기 갈 길로 가는 것이다. 일반적인 펀드들의 경우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 한전, 국민은행, 포스코 등의 종목에서 굳이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 종목의 지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이들 종목에만 투자하더라도 펀드 수익률이 시장과 크게 어긋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과수익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투자 비중을 조절하거나, 이들 종목으로는 시장수익률을 따라가는 보험 형태로 투자하고 나머지 전략 종목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당주 펀드는 이러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철저히 무시한다. 당연히 펀드 수익률도 종합주가지수 등 시장수익률과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또 다른 특징은, 배당주 펀드의 궁극적인 목표는 배당성향이 높은 종목에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들 종목의 특징 중 하나는 주가의 변동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펀드 수익률의 변동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다시 말해 위험이 낮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배당주 펀드도 인기를 끌면서 점차 변화를 겪고 있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배당주 펀드는 대부분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로 시장수익률과 펀드수익률의 민감도(이를 베타로 나타냄. 베타가 1이면 시장수익률과 펀드수익률이 동일하게 움직임을 의미함)가 매우 낮았으나, 운용규모가 증가하면서 대형주 비중이 높아져 베타값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펀드는 아예 대형주 투자를 목표로 하기도 한다. 당연히 펀드수익률이 시장수익률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게 된다. 결국 이는 배당주 펀드의 투자위험이 그 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성격의 펀드들이 시장에 등장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투자대상이 다양해짐에 따라 펀드수익률의 원천 및 그 위험의 질도 다양해지겠지만 역시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그 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투자스타일의 변화 못지않게 많은 투자자들이 배당주 펀드를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배당주 펀드는 궁극적으로 높은 배당이익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추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달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땅만 바라보며 달리다간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으로 향해갈 수도 있다. 중간 중간 지도를 펼쳐놓고 달려온 좌표와 달려갈 좌표를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운용사마다 배당성향이 높은 종목을 고르는 기준이 다르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운용사간 펀드간 포트폴리오가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운용수익률도 같은 배당주 펀드라 하더라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과일이라도 그 맛은 서로 다르지 않는가.
이젠 가을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개인적으로 여름과 겨울로 푹 꺼지지 않는 아슬한 이 가을을 좋아한다. 따가운 가을볕마저도 못내 떠나기 아쉬워하는 녀석의 귀여운 투정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리곤 이 가을이면 항상 막연한 설렘이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설렘 속 한 귀퉁이에는 모든 시름 잊고 떠나라는 암시가 숨어 있는 것일까. 여러분도 투자는 펀드에 묻어두고 한 번 가을로 떠나보심이 어떨는지....
(이재순 제로인 조사분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