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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수입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신세계L&B도 지난해 7월 위스키 사업을 중단했다. 신세계F&B는 제주소주 부지에서 위스키를 제조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제주소주마저 매각하며 사업 재편을 진행 중이다.
대기업의 이런 행보는 주류 스타트업 ‘기윈’이나 ‘김창수 위스키’가 위스키 생산을 이어가며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실제 국내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단일 증류소에서 몰트(맥아) 단일 원료로 만든 위스키) 회사인 기원은 최근 주류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국제 와인 앤 스피릿대회(IWSC) 2025’에서 ‘기원 유니콘’으로 세계 위스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위스키 시장에서 발을 빼는 데는 우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위스키 사업의 기본적인 특성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맥아나 여러 곡류를 발효해 얻은 발효주를 증류해 만든 후 오크통(나무통)에서 숙성해 만든다.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최소한 3년 이상 숙성돼야 위스키로 인정받을 수 있다. 통상 위스키 숙성은 짧은 경우 5년 안팎, 긴 경우 10~30년 이상도 걸린다. 이런 기간이 되기까지 제품을 단 하나도 팔 수 없다는 얘기다. 위스키 사업을 상품화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롱텀 비즈니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전문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대기업 상장사는 이런 장기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현금흐름을 창출하기 어려운 사업으로는 대주주 등 주주, 이사회, 투자자 설득이 어려운 탓이다. 신세계L&B는 우창균 전 대표가 위스키 사업을 추진했지만, 송현석 전 대표 체제에서 그룹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강조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롯데칠성음료도 제주도 부지 선정 과정의 토지 측량 과정에서 동굴이 발견되는 등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였다.
여기에 실적 부진으로 위스키라는 장기 사업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실제 신세계L&B는 지난해 매출이 1655억원으로 전년 대비 7.8% 줄어든 데다 영업손익은 52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롯데칠성음료도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874억원으로 전년 대비 9.9% 감소하고 매출도 1조9976억원으로 1.9% 줄었다.
고물가 등으로 위스키 소비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도 위스키 사업 매력을 떨어트린 요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위스키 수입액은 1억4875만달러(2074억원)로 전년 동기(1억6307만달러)보다 8.7% 줄었다.
무엇보다 국내 증류주에 대한 종가세 제도가 대기업 참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는 지적이다. 종가세는 술의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고품질 술을 만들기 위해 좋은 원재료를 써 원가가 높아지면 세금이 높아지는 구조다. 위스키 세율은 72%에 이른다. 위스키 한병 출고가가 1만원이라면 7200원의 주세가 붙는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더해지면 최종소비자 가격은 확 뛴다. K위스키가 해외 위스키와 경쟁이 쉽지 않은 이유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종가세 제도는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기 힘들게 한다”며 “비싼 제품을 개발하면 그만큼 세금이 높아져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OECD국가 중 주세로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는 곳은 한국과 멕시코, 칠레 등 4곳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