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최근 식자재 거래명세서를 보여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식용유 18L 1통당 5만2000원. 식용료의 원료인 대두유 가격이 폭등한 영향에 식용유 값도 한달새 1만원 넘게 올랐다. 이씨는 “경기가 안 좋은데 가격까지 올리면 손님이 떨어질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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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지만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여전하다. 식자재 값이 껑충 뛰어서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농산물 가격은 정점을 찍었다. 관세청 조사 결과 지난달 수입 밀 t당 가격이 402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1.4% 상승하는 등 ‘오르지 않은 게 없다’고 자영업자들은 하소연한다.
다만 자영업자들은 식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 가격 인상을 망설이고 있다. 공덕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세권(58)씨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 반짝 매출이 늘었지만 원재료 값이 올라서 손에 쥐는 돈은 큰 차이가 없다”며 “밀가루, 식용유 가격뿐 아니라 전반적인 원재료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이어 “가격에 예민한 손님들 발길이 끊길까봐 값은 못 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62)씨는 “밀가루에 버터, 계란 가격까지 올라 운영하기 너무 힘들다”며 “가격을 올리고 싶은데 100원만 올려도 손님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참다 못해 가격을 올린 자영업자도 있었다. 공덕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지난주 주말 가격인상을 반영한 메뉴판을 새로 만들었다. 김씨는 “그동안 빚만 쌓여서 이제는 갚을 때인데 재료값이 너무 부담이 된다”며 “어쩔 수 없이 치킨이랑 안주 값을 1000원씩 올렸다”고 말했다.
가격이 크게 오른 식재료가 들어가는 메뉴는 아예 팔지 않기로 한 사례도 있었다. 용산구 후암동에서 일식 주점을 운영하는 박민지(32)씨는 “연어가 1kg에 2만원이 넘어가 메뉴에서 빼고 지금은 취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연어 대신 다른 메뉴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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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외식 물가 인상에 불만을 토하고 있다. 일산에 거주하는 전모(33)씨는 “눈을 감았다 뜨면 치킨 값이 1000원, 2000원씩 올라가 있다”며 “특히 거리두기 해제 후 음식점 곳곳에서 일제히 가격이 올라 외식이 더 부담스러워졌다”고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시민도 있었다. 역시 일산의 박모씨(37)씨는 “밥값을 아끼려고 회사에 도시락을 싸다니고 있다”며 “요즘 한 끼에 1만원은 기본이지 않나. 매 끼를 사먹는 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가격 급등이 일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애그플레이션은 연초부터 이어오던 식료품 가격 상승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만나며 악화된 결과”라면서 “해외에서 발생한 공급 충격이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 결국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50%도 되지 않는다”며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