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록 스타는 자동차를 좋아해①

피용익 기자I 2018.02.15 17:13:50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모터싸이클을 타는 가죽재킷 차림의 남자.’

록 뮤지션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앨범 표지, 포이즌의 노래 “Ride the Wind”, 주다스 프리스트의 공연 무대 등은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사실 록 뮤지션들은 모터싸이클 만큼이나 자동차를 좋아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희귀한 자동차를 보유하거나 일반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슈퍼카를 수집하는 뮤지션들이 많다.

◇ 존 레논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대표적인 자동차는 롤스로이스였다. 1965년 그는 검은색 팬텀 V를 구입했다. 내부에는 칵테일 캐비넷과 책상, 독서용 램프, 포터블 텔레비전을 설치했고, 트렁크에는 냉장도고 달았다. 그러나 스페인 여행 중 팬텀 V는 심하게 훼손됐고 레논은 1967년 수리를 위해 자동차를 맡겼다. 이를 계기로 내부를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큼직한 재떨이가 달린 더블 베드, 차가 움직여도 바늘이 튀지 않는 첨단 레코드 플레이어 등이 설치됐다.

더 큰 변화는 차량 외부였다. 검은색 도색은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 표지에서 영감을 받은 알록달록한 무늬가 그려져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런 파격을 누구나 반긴 것은 아니었다. 1967년 여름 레논이 새로 색칠한 팬텀 V를 몰고 런던 피카딜리 거리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이 “이 돼지야! 어떻게 감히 롤스로이스에 이럴 수가 있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누가 뭐라고 하든 레논은 이 자동차를 애용했다. 1969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대영제국 훈장을 반납하기 위해 버킹엄궁을 방문했을 때도 이 노란색 팬텀 V를 타고 갔다. 1970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는 팬텀 V도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레존의 팬텀 V는 그가 총에 맞아 죽기 3년 전인 1977년 과학지식 보급을 위해 창립된 학술협회 스미스소니언에 기증됐으며, 지금은 캐나다 왕립 브리티시 컬럼비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편 레논의 운전 실력은 형편없었다. 스페인에서 팬텀 V가 엉망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1969년 7월 1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아내 요코 오노와 딸 쿄코, 아들 줄리언을 태우고 오스틴 맥시를 운전하다가 자칫 온가족이 죽을 뻔한 대형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사고 직후 기자들에게 “교통사고를 내려면 하이랜드에서 내세요. 그곳 병원이 아주 훌륭하거든요”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였지만, 그 후 다시는 직접 운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존 레논이 사용하던 롤스로이스 팬텀V (사진=롤스로이스)
◇ 데이빗 보위

데이빗 보위는 뮤지션이었고 영화배우였으며 큐레이터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동차와의 인연도 깊었다.

보위의 자동차로 이른바 ‘거울 미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1999년 영국 런던 디자인박물관은 미니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디자인 경연대회를 열었다.

어린 시절 미니 조립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보위는 박물관 측의 요청을 받고 경연에 참가했는데, 거울처럼 반짝이는 미니 쿠퍼를 출품해 단연 주목을 끌었다. 다만 거울 미니는 실제로 운전할 수 있는 차는 아니었다.

보위가 직접 운전한 차로는 볼보 262C가 유명하다. 이 차는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하우스 베르톤에서 디자인됐으며, 미국 시장에서 캐딜락 엘도라도와 경쟁하기 위해 생산됐다. 보위는 스위스 거주 시절이던 1981년에 이 차를 구입해 1988년까지 사용했다.

볼보 262C는 단 6620대만 생산된 희귀한 차종으로 꼽힌다. 특히 보위가 사용하던 차는 ‘음악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이유 때문에 지난해 경매에서 21만6000달러(약 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보위는 한 때 1967년형 재규어 E타입을 운전하기도 했고, 메르세데스-벤츠 600 풀만 리무진을 타고 투어를 하기도 했다. 50년에 달하는 활동 기간 만큼 그가 소유했던 자동차는 다양하다.

자동차는 보위의 작품 소재로도 등장한다. 그는 “Always Crashing the Same Car”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이 곡은 실제 교통사고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바가지를 씌웠던 마약 딜러의 차를 반복해서 박고 도망갔던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음악은 자동차 광고에도 여러 차례 사용됐다. 지난 2014년 “Let`s Dance”가 기아자동차(000270)의 ‘카덴자’(한국명 K7) 광고에 쓰인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에는 캐딜락 에스칼레이드 광고에 “Fame”이 등장했고, 이에 앞서 아우디와 BMW 광고에도 그의 음악이 쓰인 바 있다.

데이빗 보위가 디자인한 ‘거울 미니’ (사진=B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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