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아서)⑬GM에 아무리 좋아도···

양효석 기자I 2008.12.30 11:08:53

`글로벌 스탠더드는 반드시 정답인가` 따져봐야
한국식 지배구조 찾는 일도 주요한 숙제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GM에 좋은 것은 미국 경제에도 좋다(What is good for GM is also good for the US economy)`

GM 사장이었던 찰스 어윈 윌슨이 1952년 국방장관에 발탁되면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GM은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회사다. GM은 수십년 동안 이 같은 논리를 미국 사회에 주입시키며 미국식 스탠더드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에서 GM에 좋은 것이 반드시 한국에도 좋을 순 없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 불리우는 미국식 기준이 우리나라 경영·경제 상황에도 맞아떨어지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성장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에선 `한국식 스탠더드`가 이로울 때도 있다.

◇글로벌은 `세트요리`가 아니라 `선택요리`

지난 2001년 자산규모 634억 달러의 에너지기업 엔론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이듬해에는 자산규모 255억 달러의 통신기업 글로벌크로싱, 자산규모 240억 달러의 방송·미디어그룹 아델피아, 자산규모 1038억 달러의 통신기업 월드컴까지 줄줄이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다. 미국의 파산보호 신청은 한국의 법정관리와 비슷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식회계로 인한 신용등급 추락으로 자금확보가 어렵게 됐다는 것. 이들의 파산은 금융시장과 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꺼려 자금시장이 경색됐다. 투자심리도 위축되어 당시 주식 뮤추얼 펀드 환불액이 급증했다.

신경제의 장기호황과 폭발적인 성장과정에서 미국식 경영에 대해 자만한 것이 회계분식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2008년 9월. 158년 역사의 미국 4위 증권사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리먼은 지난 6월까지도 분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리먼의 CEO는 올 3월 2007년도 성과급으로 2200만 달러를 챙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견조한 듯 보였던 리먼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부동산 대출 등 부실자산 규모가 눈덩이 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리먼은 작년 미국의 최대 모기지 채권 인수업체로, 시장점유율이 10%에 달했다. 그만큼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부실채권 규모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미국식 경영의 골자는 스톡옵션을 이용해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보상을 경영실적과 연관시키는 한편, 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경영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시스템은 90년대 중반 이후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급속히 확산됐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목으로 미국식 경영시스템 도입이 당연시 됐다.

그러나 신경제가 몰락하자 그동안 가리워졌던 미국식 경영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노출됐다. 스톡옵션을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게 단기 업적에 집착하다 보니 분식회계를 저지르는가 하면,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그들을 감싸고 대변하는 `홍보이사`로 전락했다. 회계법인들도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경영실적과 기업가치를 부풀린 탈법·편법 행위를 눈감아 주기도 했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로 불려진 미국식 경영시스템에 대한 반대입장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기업환경이나 국가별 경제상황에 걸맞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반드시 선택해야 할 시스템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선택메뉴인 셈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미국은 서비스 산업 비중이 크고 기업지분이 극도로 분산돼 전문경영인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지속해왔고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창업자나 대주주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면서 "미국식 경영시스템을 강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문지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경영을 급속하게 도입·모방해 왔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식 경영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우리 고유의 시스템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식 지배구조를 찾아라

몇해 전, SK㈜에 이어 KT&G가 외국자본의 경영권 공격에 시달렸다.

KT&G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꼽히고 있어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과연 좋은 지배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위기 등으로 글로벌 투자펀드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기업지배구조 재편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변화는 미국에선 기존 체제를 보완하는 셈이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체제를 대체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때문에 기업지배구조 변화가 경영환경에 대한 고려없이 강행되면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환경과 연계된 점진적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소유가 경영이 일치된 경영형태가 유효하게 자리를 잡아왔다"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만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 기업들도 지역에 따라 지배구조가 다르다. 북미, 유럽, 일본 등 선진 10개국의 시가총액 20대 기업중 지배권이 분산된 기업은 38%에 그친다는 보고서도 나와있다. 우리나라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은 거래소 상장사중 23%에 수준이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 명목으로 한국 지배구조를 무리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은 위험하다.

특히 한국 상황에서 그룹사를 오너경영으로 보기 보다는 한국식 전문경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선 비록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고 있어도 개인 지배주주가 존재하면 오너경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한국시장은 감시주주가 없는 영미식 전문경영 보다는 지배주주를 감시체제로 삼는 전문경영체제이다.

또 그룹사는 경영자 기업보다도 더 높은 외국인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외국인 주주의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다. 주요주주로 기록되는 외국인은 대부분 합작투자나 지분참여를 한 외국 제조기업이나 장기투자목적으로 지분매입한 외국계 펀드들이다.

SK㈜와 KT&G에 들어왔던 외국자본도 겉으로는 지배구조변화를 요구했지만, 결국은 해당기업의 성과와 전망이 좋다는 판단하에 들어온 투자사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에서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요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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