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이탈리아는 유럽의 모태다. 로마제국의 중심이고, 근대의 출발을 알리는 르네상스의 고향이다.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천년 이상 독점 지배해온 교황청의 본산이기도 하다. 그랜드 투어의 참 맛을 즐기기에는 최적지임에 틀림없다. 자, 이제 떠나볼까!
::::: 창조적 천재에게 바쳐진 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 여행의 출발지로는 딱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전부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웅장했던 과거와 폐허뿐인 오늘을 잘 비교해놓은 책자를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는데, 상상력을 동원해서 비교하는 맛이 쏠쏠하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유적 한 가운데 위치한 카이사르 신전. 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BC 100~BC 44)가 누군지 가물가물 하다면 여행 떠나기 전에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뒤져볼 것. 영어로는 시저로 읽히는 이 사람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카피라이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원로원과 일전을 겨루기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동방원정 중의 승리를 원로원에 알릴 때), ‘부르투스, 너마저!’(암살되던 최후의 순간에). 이 모두가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이다.
그러나 역사가 로마 최고의 인물로 카이사르를 기억하는 건 그가 ‘창조적 천재’였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도시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던 원로원 중심의 통치 시스템을 로마 제국의 덩치에 걸맞게 제정으로 바꾸고자 했던 최초의 사람이다. 결정적인 순간 정적에게 살해당한,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신전 한 켠은 언제나 관광객들이 가져온 꽃다발로 수북하다.
● 틈새정보-영어의 7월(July)은 카이사르의 집안 이름(Julius)에서 비롯됐다. 황제를 뜻하는 독일어 카이저(Kaiser), 러시아어 차르(Tsar)의 어원도 카이사르다. 제왕절개(帝王切開·Cesarean section)도 카이사르가 태어난 방식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 카피톨리노 언덕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카피톨리노(Capitolino). 로마의 주신 유피테르의 신전이 자리했던 탓에 가장 신성시됐던 언덕이다. 로마 멸망 이후 폐허로 변했던 언덕은 천재 미켈란젤로가 만든 광장으로 인해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아이들이 봐야 할 것은 그라쿠스(Gracchus) 형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다. 그라쿠스 형제는 기원전 2세기 명문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귀족에게 땅을 빼앗긴 자영농을 위해 싸웠다.
왜? 형제에겐 사회 전체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줄 아는 희생정신과 리더로서의 책임감,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는 농지개혁에 반대하는 탐욕스런 귀족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고 말지만, 그들의 정신은 오늘까지 남아있다.
바로 이 곳 카피톨리노 언덕은 그라쿠스 형제가 시민들 앞에서 농지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던 곳인 동시에 형 티베리우스가 귀족들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장소다. 아이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갖춘 자만이 진짜 리더라는 사실을 가르치기에 이 언덕보다 적당한 곳은 없다.
● 틈새정보-그라쿠스 형제의 뒤에는 어머니 코르넬리아가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었지만 당시 관례와 달리 재혼을 거부하고 아들 교육에 전념했다. “자식은 어머니가 관리하는 밥상머리 대화로도 자란다”는 말에 자식교육을 중시했던 코르넬리아의 철학이 담겨 있다.
::::: 가리발디의 꿈이 머물고 있는 야니쿨룸 언덕
고대와 르네상스, 바로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가 바로 로마다. 이런 도시는 한 걸음 떨어져서 감상할 때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야니쿨룸 언덕을 추천한다. 언덕 꼭대기에는 너른 광장과 간이 카페까지 있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차분하게 로마를 감상할 수 있다.
언덕에는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한 수 백 명의 흉상이 흩어져 있다. 백미는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1807~1882)의 동상. 그는 이탈리아 통일이란 단 하나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안정적인 삶, 사랑하는 여인, 심지어는 왕관조차도. 동상 아래서 아이들과 얘기해보자. “넌 무슨 꿈을 꾸고 싶니?”
● 틈새정보 -가리발디의 동상은 로마시내 한 가운데의 이탈리아 통일기념관을 향하고 있지만 눈길은 아쉬운 듯 언덕 뒤 편을 향하고 있다. 눈길을 따라 50m쯤 가면 그의 평생 동지이자 사랑이었던 아내 아니타의 동상과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
::::: 역사를 바꾼 부자의 무덤, 메디치 예배당
르네상스의 성지(聖地) 피렌체는 그 시대를 찬미하는 순례자로 항상 만원이다. 여행시간에 쫓기는 한국 관광객의 발걸음은 대개 우피치 갤러리, 꽃의 성당 두오모, 시청사 앞 광장에서 그치고 마는데, 큰 걸 놓치는 것이다. 피렌체까지 갔으면 당연히 메디치 예배당(Medici Chapel)을 봐야지. 그 곳에 학문과 예술을 후원해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위대한 메디치 가문의 300년 역사가 묻혀있다.
무엇보다 메디치 가문의 중심인물로 르네상스를 극성기로 끌어올렸던 로렌초(Lorenzo de Medici·1449~1492)의 소박한 묘를 눈여겨볼 것. 후손들의 화려한 묘와 비교된다. 진짜 부자란 화려한 무덤이나 돈보다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다는 걸 가르쳐주자.
● 틈새정보-세계적인 미술관 우피치의 작품 대부분이 메디치 가문과 연관 있다. 미술관의 대표 그림인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이 주문해 제작했다. 르네상스와 메디치 가문을 찬미하고 있다.
::::: 그밖에
로마의 팔라티노(Palatino) 언덕은 전설의 왕 로물루스가 BC 753에 로마를 건국한 곳이다. 콜로세움(Colosseum)은 엔터테인먼트 제국 로마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화려했던 옛 모습은 간데없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고가면 관광에 도움이 될 듯. 제국의 영토 내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위한 판테온(Pantheon)은 로마제국이 간직했던 관용의 정신을 상징한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San Pietro Basilica)에서는 교회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성당의 건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할 포인트.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Piazza di San Marco)은 중세에 가장 잘 나가던 상업제국 베네치아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
광장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의 이국적 아름다움과 도제(베네치아의 지도자) 궁전의 정교함이 푸른 아드리아해와 조화를 이룬다. 광장의 독특한 멋에 반해버리면 4차 십자군을 이용해 비잔틴 제국을 무너트리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해버린 베네치아인의 대담함(혹은 뻔뻔스러움)이 존경스러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