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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러시아 베팅 잭팟…핵무기·현금 챙긴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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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기자I 2026.10.13 05: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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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석의 파워인터뷰②] 고영환 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
러·우전쟁 北군 파병으로 돈·에너지·군사기술 확보
북중 혈맹은 착시… 속으론 서로 경계
군수경제는 활기, 주민경제는 여전히 피폐

우리 사회에 따뜻함을 전해온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사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들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고영환 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이 예종석의 파워인터뷰를 찾았다.(사진=김태형 기자)
고영환 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이 예종석의 파워인터뷰를 찾았다.(사진=김태형 기자)
[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도박이 성공한 걸로 보입니다.”

고영환(73) 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이뤄진 북한의 대러시아 밀착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낡은 포탄과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병력까지 보내는 승부수를 던진 대가로 북한은 현금과 에너지, 군사기술을 얻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19 국경 봉쇄로 벼랑 끝에 몰렸던 북한 경제에도 숨통이 트였다. 고 전 원장은 이를 두고 “죽어가던 북한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 전 원장은 김 위원장의 시선이 러시아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러·우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의 지원 여력이 줄어들면 다시 중국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어서다. 중·러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양쪽을 오가는 북한 특유의 ‘양다리 외교’가 김정은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거듭 내비치는 가운데 북한의 핵 보유량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고 전 원장은 과거와 같은 비핵화 ‘빅딜’보다는 핵을 사실상 보유한 북한과 미국이 서로의 레드라인을 관리하는 ‘관리형 관계’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예상했다.

1991년 한국으로 귀순한 고 전 원장은 북한 외교관 출신이다. 김일성 전 주석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을 정도로 북한 내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귀순 이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약 27년간 북한과 대북 전략을 연구했다. 이후 대학 초빙교수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을 지냈다.

북한 외교의 속내를 직접 경험하고 30년 넘게 추적해온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북미 대화의 향방부터 김정은의 중·러 외교전략, 북한 경제와 민심, 남북관계 전망까지 거침없이 답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다시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은.

△대화 자체는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과거와 같은 형태로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면 제재를 모두 풀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북미 회담이 열린다면 일종의 ‘관리형 관계’로 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테니 중요한 제재 몇 개는 풀어달라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핵은 가진 채 미국과의 긴장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지금의 핵·미사일 능력을 갖추게 됐나.

△모든 것을 자체 기술만으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 개발 과정에서는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A.Q. 칸의 핵 확산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있었고 북한이 오랫동안 쌓아온 원자로 운용과 핵 연구 경험도 있었다. 미사일 역시 북한 장거리 미사일의 액체연료 엔진 기술이 옛 소련의 RD-250 계열과 연결됐다는 분석이 있다. 옛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미사일 엔진 생산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북한이 옛 소련 붕괴 이후 혼란기를 이용해 엔진이나 관련 기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구체적인 유입 경로는 단정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얻은 기술을 자체 연구와 결합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체제 생존 수단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만든 핵을 김정은이 협상 테이블에서 쉽게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

-김정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 파병으로 무엇을 얻었나.

△경제·군사·외교 등 세 분야에서 모두 이익을 취했다. 북한은 오래된 포탄과 무기를 러시아에 보내면서 군수산업을 재가동할 수 있게 됐다. 현금과 군사기술, 디젤과 휘발유 같은 에너지도 들어왔다. 외부에서 북한이 100억달러를 벌었다는 추정도 있지만 여러 경로로 알아본 바로는 그 정도까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다. 돈과 에너지, 군사기술이 동시에 들어오면서 죽어가던 북한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병력 파견은 김정은에게 도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병력이 필요했고 북한은 병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까지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었다. 중국까지 끌어당긴다면 굳이 남한이나 미국에 매달릴 이유도 줄어든다. 현재까지는 김정은의 러시아 도박이 성공했다고 보는 이유다.

-북한 경제도 살아나고 있나.

△군수공업은 상당히 활기를 띠는 것으로 안다. 러시아에서 자재와 돈이 들어오면서 군수공장이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군수공업과 연결된 제철·제련 같은 분야도 조금씩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인민경제 전체가 살아난 것은 아니다. 평양에서 청진까지 약 800㎞인데 과거에는 8시간가량 걸리던 것이 지금은 거의 하루가 걸린다는 얘기를 듣는다. 철로가 낡았고 전기가 끊기면 열차가 멈춘다. 신형 탱크나 군함을 내놓지만 고강도 철판 같은 핵심 소재는 외부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하다고 한다. 북한이 해마다 철도·운수·강철·석탄·화학공업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역으로 보면 그 문제가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핵과 미사일은 만드는데 주민경제를 떠받치는 기초 산업과 인프라는 낙후돼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북한 외교의 중심도 러시아로 옮겨간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러시아에서 얻을 것이 많을 때는 러시아에 붙고 러시아의 지원이 줄면 다시 중국으로 간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이어진 외교 방식이다. 김일성 전 주석도 사람들은 우리가 중국과 소련이라는 두 의자 사이에 앉아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체의자에 앉아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 양쪽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북한을 지금처럼 지원할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 결국 북한을 경제적으로 크게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고영환 전 국립통일교육원장은 북한 변화를 이끌 가장 현실적인 힘으로 한류를 꼽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이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고 체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보다 주민들의 의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이 유혈 사태를 막고 평화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김태형 기자)
고영환 전 국립통일교육원장은 북한 변화를 이끌 가장 현실적인 힘으로 한류를 꼽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이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고 체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보다 주민들의 의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이 유혈 사태를 막고 평화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김태형 기자)
-북한이 다시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나.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일종의 ‘SOS’를 친 것 아닌가 싶다. 그 단서 가운데 하나가 신압록강대교다. 중국이 비용을 부담해 건설했고 완공한 지 10여년이 됐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왕복 4차선인 이 다리로 유사시 대규모 병력이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이 왜 공짜로 다리를 만들어주겠느냐는 경계심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측 세관 시설 건설이 크게 진척됐다. 북중 사이에 새로운 협의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게 내 판단이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고 중국은 신압록강대교를 통한 물류 확대를 원한다. 중국이 오랫동안 원해온 훈춘 지역의 동해 진출 문제도 북한이 쥔 카드다. 중국 동북3성에서 동해로 연결되면 물류가 바로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중국이 원했지만 북한이 쉽게 응하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정말 급할 때 꺼낼 수 있는 ‘동해 출구 카드’인 셈이다.

-흔히 ‘북중 혈맹’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가까운가.

△북중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중국이 북한과 만날 때마다 ‘전략적 소통’을 강조한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양국 고위층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부는 중국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이 자신들의 체제에 영향을 미칠 힘과 지리적 조건을 모두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는 일본은 ‘백년숙적’, 중국은 ‘천년숙적’이라는 식의 인식까지 있다. 반면 러시아에는 상대적으로 심리적 부담이 덜하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는 이유다.

-1991년 북한과 지금 북한은 얼마나 달라졌나.

△1987년 김영남 당시 부총리를 수행해 모스크바에 갔다. 고르바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연설을 했다. 당시 젊은 외교관들과 그 연설을 듣고 돌아와 70년간 사회주의를 이어온 소련도 변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울었다.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마저 무너졌다. 북한 외교부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걸프전에서 강한 군사력을 갖췄던 이라크가 현대전에서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도 큰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이러다 우리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김정은은 핵무력을 갖췄다고 주장하고 미국 대통령과 직접 만난 경험도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했고 중국도 다시 끌어당기려 한다. 35년 전에는 체제 붕괴를 걱정했다면 지금은 핵과 중·러라는 버팀목을 갖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자신감 자체가 달라졌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지금 같은 폐쇄 노선을 택한 것인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중앙TV에서 미키마우스나 영화 ‘록키’ 같은 서구 문화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당시 연구원에서도 ‘혹시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뒤 방향이 달라졌다. 개방이 계속되면 체제가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핵무기가 없으면 언제든 자신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쪽으로 간 것으로 본다.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은 내부적으로 김정은에게 정치적 자산도 됐다. 젊은 지도자가 핵무기도 만들고 미국 대통령까지 만나니 간부들 사이에서 ‘그래도 뭔가 해낸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언급하고 미국과 정상회담에 나선 것도 그런 자신감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노딜로 끝났다. 북한은 애초에 핵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도 급격히 나빠졌다.

△하노이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미국과의 큰 합의가 무산되는 동안 북한 내부에서는 한류가 계속 퍼졌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장마당 세대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북한 주민들도 이제 한국이 어느 정도 잘사는지 안다. 북한 지도부가 계산해보니 남북 교류를 통해 쌀과 비료를 얻는 것보다 한국 정보가 들어와 체제가 받을 충격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0년 이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한국 문화와 정보를 막는 법과 제도가 잇따라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투까지 통제한다.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오빠’라고 하면 한국 드라마를 본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자기’ 같은 표현도 단속 대상이다. 한국의 문화와 언어, 생활방식이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북한 지도부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주민 통제와 민심은 어떤가.

△통제는 오히려 더 촘촘해졌다. 고위 간부들도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시간 단위로 기록해 보고한다. 일반 주민,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한국 영상물을 보는지 휴대전화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까지 단속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 불만도 쌓이고 있다고 본다. 최근 북한을 나온 엘리트 탈북민에게 들으니 김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신선하게 받아들였지만 너무 자주 나오고 어린 김주애에게 군 고위 간부들이 보고하는 모습까지 나오면서 불편해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지금 북한 사회는 ‘끓는 솥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상태’와 같다. 안에서는 부글부글 끓는데 강한 통제로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누르고 있는 것이다.

-탈북한 지 35년이 됐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면.

△북한 외교관으로 일할 때는 지금 생각하면 대한민국에 못된 짓을 많이 했다. 대한민국의 외교 활동을 저지하려고 동유럽과 아프리카를 다녔다. 한국에 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벽돌 한 장을 놓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벽돌을 빼려고 했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나를 받아줬다. 그래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겼다. 1992년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거의 27년간 북한을 연구했고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국립통일교육원장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온 북한 외교부 후배들이 ‘해외에 있을 때 선배가 한국에서 어떻게 사는지 계속 찾아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북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온 뒤 통일을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나.

△크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컸다. 부모 형제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북한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8년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북한에는 내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살고 있다. 그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온 지 10년 정도 됐을 때부터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피를 흘리지 않는 통일, 유혈사태가 없는 통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영환 전 원장은 앞으로도 북한 관련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현실을 알리고 평화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무력이나 갑작스러운 붕괴만이 아니다. 정보가 들어가고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더 근본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 한류는 그런 점에서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탄과 같다.” (사진=김태형 기자)
고영환 전 원장은 앞으로도 북한 관련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현실을 알리고 평화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무력이나 갑작스러운 붕괴만이 아니다. 정보가 들어가고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더 근본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 한류는 그런 점에서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탄과 같다.” (사진=김태형 기자)
■고영환 전 원장은…

△1953년 자강도 강계 △평양외국어대 불어불문학과 △경희대 행정대학원 안보정책 전공 석사 △북한 외교부 아프리카 담당 과장 △주 자이르·콩고 북한대사관 근무 △1991년 대한민국 망명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부원장 △통일미래기획위원회 국제협력분과 위원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 △제27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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