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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달러가수요 잠재울 특단대책 필요한 시점

손동영 기자I 2000.11.23 12:25:24
달러/원 환율이 23일 장중한때 1187원까지 치솟았다. 이날 환율은 지난 15일의 1135.70원에 비해 이미 50원이나 폭등한 것. 역외세력의 달러매수공세에 외환시장이 무기력하게 당하면서 이제 외환당국의 대응시기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의 통화에 대한 역외세력의 공격이 성공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기업이나 개인들의 달러가수요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제 심정적으로 1200원대 환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있다. ◇외환위기를 맞는 국가들의 공통점 지난 97년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과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역외세력은 해당국 통화를 집중 공략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역외세력의 통화공략 규모가 일반인의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것. 역외세력은 많지않은 규모의 달러를 사들이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여파로 환율이 오르는 과정에서 해당국민들의 달러가수요가 폭발했다. 외환당국이 이를 감당하면 방어에 성공하겠지만 불행하게도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국가가 실패했다. 역외세력의 공략대상들은 명백한 취약점을 갖고있다. 한국의 경우도 당시 한보철강 부도이후 걷잡을 수 없는 부도도미노가 이어졌고 정치권 파행으로 구조조정은 미로를 헤맸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경제를 챙길 여력이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요즘 동남아나 우리나라가 통화가치 폭락으로 위기에 처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등은 모두 정치불안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최근 역외세력의 달러매수를 단순히 투기적인 매수로 볼 수는 없다. 한국시장에 불안을 느낀 외국투자자들이 환리스크 헤지차원에서 달러를 매수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처방은 마찬가지다.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선다면 투기적 매수도, 헤지매수도 줄어들 수 있다, ◇달러 가수요가 큰 문제 외환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달러 가수요심리가 팽배하다. 지금 달러를 사두지않으면 낭패를 볼 것이란 두려움이 강하다. 달러를 갖고있는 기업들도 당분간 팔 생각이 없다. 가뜩이나 수출이 안돼 벌어들인 달러가 많지않은데다 그나마 갖고있는 달러도 움켜쥐고있는 것. 시중은행 한 딜러는 “22일 오전장에서 당국의 개입을 예상하고 달러를 좀 팔아볼 생각을 가졌던 기업들도 환율이 폭등세로 다시 돌아서자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은행들도 오후장 후반에는 달러사자에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수요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많다는 뜻이다. 외환딜러들은 일단 1200원선까지 환율이 오른 뒤 조정을 받을 가능성을 높게 보기 시작했다. ◇당국의 대응이 어려운 이유 달러가수요가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외환보유고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당국은 정유사들의 달러수요를 늦추고 공기업과 국책은행들을 통해 달러공급을 늘리는 정도로 대응하고있다. 이 정도로도 환율폭등세를 잠재울 수 있다면 다행이다. 환율불안이 주가나 금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외환위기 재발등 극단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있어 위기의식은 극에 달하고있다. 정부는 외환보유고로 역외투기세력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반드시 완승을 거둬야하는 절박함을 느끼고있다. 그러나 대만당국이 시장 불개입 원칙을 밝히는등 주변여건을 보면 아직 당국이 본격개입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아시아권 통화폭락은 대만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동남아 각국이 공동대응해야할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만 통화가치 방어에 홀로 성공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역외세력에게 원화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던 국내외 경제상황이 전혀 달라지지않고있다는데서 고민이 크다. 미국증시 불안, 국제유가 상승, 달러강세등 다양한 외부요인과 함께 구조조정 지연, 경기 침체등 국내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가시지않는 한 당국이 외환시장에 달러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환율급등세가 잠잠해지기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고있기 때문이다. ◇환율상승 어느 수준에서 막아야하나 당국은 현재의 환율수준에 대한 걱정보다 상승속도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있다.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환율상승은 용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은행딜러들은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있다. 현재 환율상승이 우리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란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 동남아 통화가 일제히 폭락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원화가치 하락으론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상승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경제 전반에 위기의식만 증폭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을 내놓고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수출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환율수준에서 추가상승하는게 유리하지만 그보다는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충격이 너무 크다”며 “당국의 시장조절능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시각이 나오는 배경에는 최근 환율폭등 과정에서 국내은행들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외세력이 환율폭등세를 주도하면서 간간이 차익실현에 나선 반면 국내은행들은 당국의 개입을 믿고 환율이 떨어질 때 팔고, 역외세력의 공략으로 환율이 오를 때 사는 악순환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시중은행 딜러는 "아직 달러가수요가 폭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많은 시장참가자들이 당국의 개입을 원하고있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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